출생 | |
사망 | |
본관 | |
별칭 | 호(號)는 산남(山南) |
직업 | 독립운동가 |
가족 | 조혁순(부), ???[1](모) 김자옥(부인), 슬하 3남 3녀 |
정당 | |
학력 | 경성제국대학교 법학과(중퇴)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
종교 | |
서훈 |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조규찬은 1909년 8월 14일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1년 4월 경성제국대학에 재학하던 중 신현중 등과 함께 동교내의 비밀결사인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또한 발전적인 반제부(反帝部)로 개편하고 시내 각급 학교와 연계하여 공작조직을 확대하고 반제학생협의회(反帝學生協議會)를 결성하였다.
만주사변이 발발한 뒤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반제신문(反帝新聞) 및 격문을 간행하여 반포하고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32년 11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8.15 광복 후 전남대 의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으며, 1997년 6월 26일 서울 한양대병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조규찬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만주사변이 발발한 뒤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반제신문(反帝新聞) 및 격문을 간행하여 반포하고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32년 11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8.15 광복 후 전남대 의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으며, 1997년 6월 26일 서울 한양대병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조규찬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