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준수는 1888년 6월 10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서상면 남산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4년경 만주로 망명한 뒤 독립운동기지를 알선했다. 1919년 4월 북간도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의민단(義民團)에 가입하였으며, 총 400여정을 보유하고 국내진공작전을 게획하여 이의 실행을 위해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29일 간도 소재 간북대한의민회(墾北大韓義民會)·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등이 통합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간북남부총판부재무관서(墾北南部總辦部財務官署) 참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21년 4월 의민단 선전부장이 되어 중국 길림성(吉林省) 영안현(寧安縣)[1]을 중심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29년 흑룡강성 수화시 북림구 해륜시[2]에 한인 이주민 농장인 선목농장(善牧農場)을 설치하여 대표를 맡았으며, 8.15 광복 이후에도 만주에서 살다 1957년경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정준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20년 10월 29일 간도 소재 간북대한의민회(墾北大韓義民會)·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등이 통합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간북남부총판부재무관서(墾北南部總辦部財務官署) 참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21년 4월 의민단 선전부장이 되어 중국 길림성(吉林省) 영안현(寧安縣)[1]을 중심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29년 흑룡강성 수화시 북림구 해륜시[2]에 한인 이주민 농장인 선목농장(善牧農場)을 설치하여 대표를 맡았으며, 8.15 광복 이후에도 만주에서 살다 1957년경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정준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