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종수는 1897년 2월 17일 평안북도 초산군 초산읍 읍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이주했고, 1920년 음력 10월 이차구에서 대한독립단에 입단해 군사교육을 받았고 1922년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2중대 참사로 이광호(李光浩) 등과 함께 1923년 8월 14일 우시면 경찰주재소를 공격하여 경찰 3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일본 경찰의 44식(式) 총 6정, 군도(軍刀) 6자루, 수통(水桶) 6개 및 탄환 등을 획득하였다. 같은 날 면사무소를 공격하여 면장을 사형 집행하고 면민들에게 광복 사업에 대한 연설을 하고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1924년 5월 17일 평북 강계군 시중면 안체동, 음력 5월 18일 시중면 외시천동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음력 5월 25일에는 평북 초산군 초산면 직동에서 초산경찰서를 공격해 경찰 1명을 사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6년 6월 2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5년 8월 13일 가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정종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4년 5월 17일 평북 강계군 시중면 안체동, 음력 5월 18일 시중면 외시천동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음력 5월 25일에는 평북 초산군 초산면 직동에서 초산경찰서를 공격해 경찰 1명을 사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6년 6월 2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5년 8월 13일 가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정종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