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수(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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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만수(鄭萬洙)
일본식 이름
東田萬洙
생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 인의동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만수는 1910년 12월 19일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 인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충청남도 천안군 청안면 구성리로 이사갔고, 그곳에서 이발업에 종사했다. 한편 한인 자제들을 상대로 야학(夜學)을 시작했던 그는 1943년 7월 천안 조선일보 지국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에게 신문기사를 오려 붙여 만든 책을 빌려줬다. 이 책에는 민족사상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또한 자신이 운영하던 야학 교사였던 지인과 주고받은 서신에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이에 일제 경찰은 이 문구를 "독립을 노렸다"고 간주하고 전격 체포했다.

결국 그는 재판으로 끌려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8.15 광복 후 평생 이발사로 살았고, 1979년 <씨알의 소리> 제84호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고를 담은 '이발사 50년 생활수기-이발사 50년 노오트'를 게재했다. 70세 때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갔으며, 1989년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 평화 대행진'에 참가해 백두산에서 판문점까지의 행진을 수행했고 백두산 정상에서 출정식을 할 때 출정 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1990년 3월 1일 미국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정만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