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전재호(田在浩) |
이명 | 전세호(田世浩), 전동배(田東培) |
호 | 화서(花西) |
생몰 | |
사망지 |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전재호는 1883년 4월 20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6년부터 1908년까지 신돌석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선봉장으로 활동했으며, 신돌석이 피살된 후에는 1909년 영릉에서 읩여을 일으켜 총선봉장을 맡아 일본군에 대항했다. 그러나 의병대가 쇠퇴하자 고향에 돌아와 매화만흥학교에서 측량학을 배우다가, 1910년 경술국치와 더불어 폐교되니 우울한 세월을 보냈다.
1919년 울진군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가담했으며, 군자금 8만원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했다가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망명을 계획했지만 원산에서 체포된 뒤 법정에서 9년 7개월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가 칩거생활을 하다 1967년 8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전재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19년 울진군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가담했으며, 군자금 8만원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했다가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망명을 계획했지만 원산에서 체포된 뒤 법정에서 9년 7개월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가 칩거생활을 하다 1967년 8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전재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