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전병관(全炳寬, Chun Byungkwan) |
국적 | |
본관 | |
출생 | |
학력 | |
종목 | |
체급 | |
신체 | 155cm, 56kg |
별명 | 작은 거인 |
1. 소개
2. 선수 경력
어렸을 때부터 기량을 인정받아 중학교 2학년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데 이어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메달이 없는데, 당시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으나 어린 나이의 경험부족으로 인상에서 한 번도 역기를 들어올리지 못하며 실격했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52kg급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는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 김창희가 라이트급에서 동메달을 따낸 이후 32년 만에 한국 역도가 올림픽에서 딴 메달이었다. 4년 후에 개최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56kg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이는 한국 역도 사상 올림픽 참가 최초의 금메달이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올림픽 2연패를 노렸으나 용상에서 실격하여 메달을 따지 못했다. 전병관이 이미 모든 걸 이룬 상태에서 목표 의식을 잃은 상황이기도 했고, 새로 개발한 역도화가 올림픽 개막 20일 전에서야 완성되어서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2000년 위궤양이 도져 현역에서 은퇴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52kg급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는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 김창희가 라이트급에서 동메달을 따낸 이후 32년 만에 한국 역도가 올림픽에서 딴 메달이었다. 4년 후에 개최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56kg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이는 한국 역도 사상 올림픽 참가 최초의 금메달이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올림픽 2연패를 노렸으나 용상에서 실격하여 메달을 따지 못했다. 전병관이 이미 모든 걸 이룬 상태에서 목표 의식을 잃은 상황이기도 했고, 새로 개발한 역도화가 올림픽 개막 20일 전에서야 완성되어서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2000년 위궤양이 도져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2001년 국가대표 역도 상비군 감독을 역임하며 선수를 가르쳤는데, 장미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대한역도연맹 홍보이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역도연맹 선수위원장에 재임중이다.
2014년 국제역도연맹(IWF) 임원에 선출되었다.
2016년 제40회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전병관 한국체육학회장과 이름이 동일해서 많은 사람들이 '역도선수 전병관이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나왔다.' 고 오해한 일이 있었다. 이후 KBS에서 역도 해설을 맡았다.
대한역도연맹 홍보이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역도연맹 선수위원장에 재임중이다.
2014년 국제역도연맹(IWF) 임원에 선출되었다.
2016년 제40회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전병관 한국체육학회장과 이름이 동일해서 많은 사람들이 '역도선수 전병관이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나왔다.' 고 오해한 일이 있었다. 이후 KBS에서 역도 해설을 맡았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 ||
금메달 | -56kg | |
은메달 | -52kg |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91 도나우에싱겐 | -56kg |
동메달 | 1990 부다페스트 | -56kg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56kg | |
금메달 | -56k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