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상세
파일:적고적.png
이미지 출처.
말 그대로 빨간색 바지를 유니폼으로 맞춰 입은 도적이라고 해서 적고적이라 불렀다. 노란 천을 두른 황건적이랑 빨간 두건을 쓴 홍건적과 비슷한 작명.
일개 도적 떼에게 서라벌 외곽 지역까지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이 시기쯤에는 신라의 지방 통제력이 완전히 무너져있음을 알 수 있다.
적고적이 일어난 지역은 나라의 서남쪽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기록에 없지만 한반도 전체의 서남부 지금의 전라도 지역은 이미 앞서 892년에 견훤이 난을 일으켜 봉기한 상황이었고[1] 경주의 서쪽까지 노략질을 했다는 것으로 봐서 서라벌의 서남쪽, 지금의 경상도 서부 지역쯤이 적고적의 근거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도적떼가 그렇듯이, 이 무리 역시 특정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후삼국시대 선종의 안식처가 현재의 김해시인 금관경인 점과 금관경은 금성의 서남쪽에 위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친가야적인 집단일 가능성이 있다.
3. 기타
[1] 다만 이 때까지는 후백제의 왕이 아닌, 공식적으로는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겸어사중승상주국한남군개국공식읍이천호를 자칭했다. 명분상 그런 거고 어쨌든 사실상 독립국을 차린 상태였다. 공식적으로 백제의 왕을 자칭한 것은 9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