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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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장 브누아 기욤 로베르 앙투안 루이 마리 아돌프 마르크 다비노
(Jean Benoît Guillaume Robert Antoine Louis Marie Adolphe Marc d'Aviano)
출생
1921년 1월 5일
룩셈부르크 콜마르베르크 베르크 성
사망
장례식
재위
룩셈부르크의 대공
배우자
벨기에의 조제핀샤를로트 공주 (1953년 결혼 / 2005년 사망)
자녀
마리 아스트리드[1], 앙리, 장[2], 마르가레타[3], 기욤[4]
아버지
부르봉파르마의 공자 펠릭스
어머니
형제
엘리자베트, 마리 아델라이드, 마리 가브리엘, 샤를, 엘릭스
서명

1. 개요2. 생애
2.1. 청소년기2.2. 2차대전 참전2.3. 통치2.4. 말년과 죽음
3. 여담

1. 개요[편집]

Jean Benoît Guillaume Robert Antoine Louis Marie Adolphe Marc d'Aviano (1921.1.7~2019.4.23, 향년 98세)

룩셈부르크의 전 대공으로 현 대공 앙리의 아버지다.

2. 생애[편집]

2.1. 청소년기[편집]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나 영국 기숙학교 앰플포스&애비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그리고 1939년 1월 5일 공위 계승자로 임명되었다.

2.2. 2차대전 참전[편집]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이 룩셈부르크를 침공하자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망명하였고 이때 장은 캐나다로 가서 라발 대학교에서 법학정치학을 수학하였다. 그리고 1942년 11월 영국에서 영국군 아이리쉬 근위대에 입대하였다. 샌드허스트에서 교육을 마친 뒤 1943년 6월 소위로 임관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 카엔 전투, 브뤼셀 수복 작전에 참여하고 그 공을 인정받아 대위로 진급하였다. 그리고 1947년 6월에 퇴역하였다.

2.3. 통치[편집]

어머니 샤를로트 대공1961년 4월 28일부터 장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다. 그리고 1964년 11월 12일 어머니의 퇴위에 따라 공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통치 기간 내내 아내 조세핀 대공비와 함께 경제와 복지, 유럽의 통합에 신경썼고 이 공로로 1986년 아헨에서 샤를마뉴 메달을 받았다. 2000년 10월 7일에 장남 앙리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다.

2.4. 말년과 죽음[편집]

2002년 여름 대공비(벨기에의 조제핀샤를로트 공주, 1927~2005. 레오폴드 3세의 딸이다.)의 요양을 위해 피슈바흐 성으로 거처를 옮겼고 2005년 사별 후에도 피슈바흐 성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폐 질환으로 입원했다가 2019년 4월 23일에 별세했다. 룩셈부르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장례식이 엄수되었고 대공국 전역에 12일간 애도기간이 선포되었다.

3. 여담[편집]

  • 프랑스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은 말년에 룩셈부르크의 발전을 극찬하면서 "유럽입헌군주제를 채택해야 한다면 그 모델은 룩셈부르크여야 한다."고 말했다.
  • 1984년부터 2000년까지 대령 계급장을 달고 영국의 정기 군대 사열식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수행하였다.
  • 룩셈부르크의 현대 미술관인 무담 미술관은 그의 통치 기간을 기리기 위해 2006년 7월부터 이름을 장 박물관으로 개칭했다. 개명식에는 그도 직접 참석했다.
  • 장 대공은 아버지(부르봉-파름 가문의 펠릭스)의 영향으로 원래는 부르봉-파름 가문(부르봉 가문의 방계로, 부르봉 왕조 항목 참고)이지만 장 대공의 아들들의 결혼에 관련해서 부르봉-파름 본가와 귀천상혼 논란이 생기자 1987년 부르봉-파름 가문과의 관계를 끊었고 현재까지 어머니의 가문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단, 1995년 다시 화해를 하여 본인 및 직계를 제외한 다른 아들들과 손자들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부르봉파름 공자(Prince of Bourdon-Parma) 칭호를 사용하게 하였다.
  • 장이 죽은지 약 1년 후인 2020년 5월 10일에 그의 장증손자[5] 샤를이 태어났다. 1년만 더 생존했다면 장증손자를 봤을 텐데 아쉽게도 생전에 못 보고 타계했다.[6]

[1] 1954년생, 합스부르크 왕조로 시집 감. 정확히 말하면 카를 1세의 4남(다섯째)인 카를 루드비히(1918~2007)의 차남(셋째)인 카를 크리스티안 대공(1954년생)과 1982년 결혼. 슬하 3남 2녀. 여담이나 벨기에의 아스트리드 공주 역시 카를 1세의 차남의 장남과 결혼했다.[2] 1956년생, 1987년 계승권을 포기하고 Hélène Suzanna Vestur라는 프랑스 여성과 속도위반 결혼하여(이 결혼이 룩셈부르크 대공가와 부르봉-파름 본가의 분쟁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3남 1녀를 낳았으나 2004년 이혼. 2009년에 Diane de Guerre라는 네덜란드 여성과 재혼.[3] 1957년생, 리히텐슈타인 공국으로 시집을 감. 프란츠 요제프 2세 공(1906~1989)의 3남이자 한스 아담 2세의 둘째 동생인 니콜라우스 공자(1947년생)와 1982년 결혼, 슬하 2남 2녀.[4] 1963년생. 스페인 귀족 Sibilla Weiller y Torlonia와 1994년 결혼하여 3남 1녀[5] 장의 장남인 앙리의 장남인 기욤의 장남[6] 장증손자 이외의 다른 증손자들은 장 대공 생전에 몇명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