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통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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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교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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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통교
1. 소개2. 이름3. 위치4. 역사5. 특징
5.1. 조선시대의 모습5.2. 현재의 모습5.3.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6. 교통
6.1. 지하철6.2. 버스
7. 여담8. 대중매체에서

1. 소개[편집]

長通橋 / Jangtonggyo

청계천의 다리이다.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4번째 다리이다.

2. 이름[편집]

‘장통교(廣通橋)’는 장통방(長通坊)의 다리란 의미이다.

‘장통(長通)’은 ‘길게(長) 통한다(通)’는 뜻이다. 북악산, 인왕산 일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지금의 동아일보사 앞에서 우회하여 흐르다가 남산 기슭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와 합쳐지는 곳이 장통방 언저리이다. 여기서 큰 물줄기가 되어 길게 이어진다는 뜻의 ‘장통’이 동네와 다리 이름에 붙은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줄임말인 ‘장교(長橋)’를 비롯하여 ‘장창교(長倉橋)’, ‘장찻골다리’, ‘장추교(長楸橋)’, ‘장추골다리’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장창교와 장찻골다리는 장통교 주변에 재래시장의 창고들이 길게 늘어서 붙은 이름이다.# 장추교는 《경도오부북한산성부도》에, 장추골다리는 《수선전도》에 나오는 명칭으로 유래는 알 수 없다. 일반 백성들은 주로 장교라고 많이 불렀다.

서울특별시 중구 장교동(長橋洞)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3. 위치[편집]

원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4길 (관철동)과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종로구 종로12길 (관철동)과 중구 남대문로10길 (삼각동) 사이에 있다. 쉽게 말하면, 종각 젊음의 거리의 큰 길 바로 남쪽, 청계천 한빛광장의 바로 북쪽에 있다.

4. 역사[편집]

장통교 옛 모습
장통교와 수표교. 뒤에 보이는 다리가 장통교이다.[1]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확실하게 모른다. 다리 서쪽 기둥에 '신미개조(辛未改造)'와 '기해개조(己亥改造)'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보아 2번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단, 저 신미년과 기해년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1950년대 장통교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7월 12일 홍수로 가운데 두 칸이 유실되었다.# 그리고 1958년 복개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2000년대에 진행된 청계천 복원공사 때 재건되었지만 원래 자리보다 약간 동쪽으로 옮겨져 세워졌고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과 삼성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다.

5. 특징[편집]

5.1. 조선시대의 모습[편집]

5.2. 현재의 모습[편집]

  • 길이 22m, 너비 11.8m, 높이 3.7m로 재질은 전부 화강암이다.

5.3. 정조대왕 능행반차도[편집]

다리의 북쪽 밑 벽면에 ‘정조대왕 능행반차도’가 타일 형식으로 붙어있다. 재질은 도자기이며 타일의 개수는 무려 5120개이다. 신한은행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으며 매년 3월마다 임직원들이 벽화를 청소한다.

6. 교통[편집]

6.1. 지하철[편집]

6.2. 버스[편집]

7. 여담[편집]

8. 대중매체에서[편집]

부천판타스틱스튜디오에 묘사된 장통교

8.1. 야인시대 합성물에서[편집]

야인시대 합성물에서 꽤 나온다. 바로 자동차가 폭☆8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극 중 저 장면은 중년 김두한이 좌익의 암살을 피하려 차를 타고 이리저리 도망가다 그만 자동차가 청계천으로 떨어져 폭발하는 내용이다.

다만, 다른 폭발 장면들도 많기 때문에 이 장면이 많이 쓰이진 않는다. 이쪽은 말 그대로 자동차이기 때문에 대개 난폭운전이나 졸음운전의 결과물로 쓰인다.
[1] 미국의 한 대학한국학연구소에서 보관 중이던 것을 근・현대 사료수집가 김영준씨가 2005년 1월 16일 KBS 《TV쇼 진품명품》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2] 그 때 백의사 단원들이 김두한을 미행했는데, 이를 눈치 챈 김두한이 이들을 때려눕혔다.[3] 그러다 대한민청 부대원들의 매복에 걸려 끌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