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이태준은 1883년 11월 21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아버지 이질(李瓚)과 어머니 경주 박씨 박평암(朴平岩)[5]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1년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안창호 선생과 친분을 쌓아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1914년 몽골에 가서 의료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했다. 몽골 마지막 칸 복드 칸의 주치의였다고 하며,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을 세워 의료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특히 당시 몽골인의 70%가 걸렸다던 성병 치료에 탁월했다고 한다. 그리고 1919년 당시 몽골 최고 훈장이었던 '에르데니인 오치르(Эрдэнийн Очир)'를 받았다고 한다.
동시에 개신교 선교 활동과 의열단에 가입하고[6]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조달 등의 독립운동 중[7] 당시 몽골의 지배자였던 '몽골의 미친 남작'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사병들에게 붙잡혀 피살됐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2000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 기념비를, 2001년에는 기념 공원이 몽골 정부와 연세대 의료원, 연세대 총동문회의 후원으로 세워졌다.
아내 김은식은 김규식의 사촌이었다.
더 자세한 일생은 네이버캐스트 참조 바람.
몽골 한인사회에서 이태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대암장학회를 발족했다. 관련 기사.
옛 군북역 자리에 이태준 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동시에 개신교 선교 활동과 의열단에 가입하고[6]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조달 등의 독립운동 중[7] 당시 몽골의 지배자였던 '몽골의 미친 남작'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사병들에게 붙잡혀 피살됐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2000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 기념비를, 2001년에는 기념 공원이 몽골 정부와 연세대 의료원, 연세대 총동문회의 후원으로 세워졌다.
아내 김은식은 김규식의 사촌이었다.
더 자세한 일생은 네이버캐스트 참조 바람.
몽골 한인사회에서 이태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대암장학회를 발족했다. 관련 기사.
옛 군북역 자리에 이태준 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