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내용[편집]
파일:external/www.wonkwangsa.kr/1tGnafEzLVeUFVl78pSGC.png
높이 1.04m, 각 면의 너비 29㎝.
817년(신라 헌덕왕 9년)에 이차돈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석으로, 원래는 1,200여년의 세월 동안 백률사 자리에 세워져 있었으나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1914년 경주 시내의 고적보존회로 이관하였고, 이 고적보존회가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바뀌었다가 광복 후에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을 거쳐 1975년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이 비석은 화강암제의 육면 기둥으로 방형의 석재 윗면을 육각형의 복련(覆蓮)으로 새긴 대좌 위에 세워져 있으며, 원래는 당위에 지붕 모양의 옥개석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이 옥개석은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육각형 모양의 비석 면 중 제1면에는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부조해놓았는데 땅이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잘린 목에서 피가 솟아오르는 장면이 간결하면서도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2~6면에는 정간(井間)을 치고 각 정간에 자경 3㎝의 글자를 새겨 넣었다.
삼국유사 권3 염촉멸신조(厭觸滅身條)의 기사에 의하면 이 비석이 세워진 연도는 817년(신라 헌덕왕 9년)이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은 심하게 마멸되어 읽기 어려우나 다행히도 글자가 마모되기 전에 이 석당기를 목판에 새긴 법첩(法帖)인 흥린군신각금생서(興隣君新刻金生書)와 원화첩(元和帖)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어 비석 내용을 모두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법흥왕이 백성들을 위하여 불법(佛法)을 일으키려고 하자 이차돈이 고의로 잘못을 범한 것으로 꾸며 자신의 목을 치게 하여 순교한 일, 그의 목을 베자 목에서 흰 우유(白乳)가 한 마장이나 솟구치면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땅이 흔들린 일,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치르고 사당을 세운 일 등이 묘사되어 있다.
현존하는 한국의 불교 공인과 관련된 사료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며, 특히 제1면의 조각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복식 및 조각사를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014년 2월 3일 문화재청에서 보물 지정을 예고하였다.연합뉴스 : 농경문 청동기·이차돈 순교비 보물지정 예고, 뉴시스 : '경주 이차돈 순교비' 보물 지정 예고, 서울신문 : 농경문 청동기·이차돈 순교비 보물 예고, 국민일보 : 농경문 청동기·이차돈 순교비 보물로 지정 하지만 워낙 보물 등재 예정 문화재가 밀려 있는 상황이라 2019년 12월 현재까지도 아직 지정 대기 중이다.
높이 1.04m, 각 면의 너비 29㎝.
817년(신라 헌덕왕 9년)에 이차돈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석으로, 원래는 1,200여년의 세월 동안 백률사 자리에 세워져 있었으나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1914년 경주 시내의 고적보존회로 이관하였고, 이 고적보존회가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바뀌었다가 광복 후에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을 거쳐 1975년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이 비석은 화강암제의 육면 기둥으로 방형의 석재 윗면을 육각형의 복련(覆蓮)으로 새긴 대좌 위에 세워져 있으며, 원래는 당위에 지붕 모양의 옥개석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이 옥개석은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육각형 모양의 비석 면 중 제1면에는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부조해놓았는데 땅이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잘린 목에서 피가 솟아오르는 장면이 간결하면서도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2~6면에는 정간(井間)을 치고 각 정간에 자경 3㎝의 글자를 새겨 넣었다.
삼국유사 권3 염촉멸신조(厭觸滅身條)의 기사에 의하면 이 비석이 세워진 연도는 817년(신라 헌덕왕 9년)이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은 심하게 마멸되어 읽기 어려우나 다행히도 글자가 마모되기 전에 이 석당기를 목판에 새긴 법첩(法帖)인 흥린군신각금생서(興隣君新刻金生書)와 원화첩(元和帖)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어 비석 내용을 모두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법흥왕이 백성들을 위하여 불법(佛法)을 일으키려고 하자 이차돈이 고의로 잘못을 범한 것으로 꾸며 자신의 목을 치게 하여 순교한 일, 그의 목을 베자 목에서 흰 우유(白乳)가 한 마장이나 솟구치면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땅이 흔들린 일,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치르고 사당을 세운 일 등이 묘사되어 있다.
현존하는 한국의 불교 공인과 관련된 사료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며, 특히 제1면의 조각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복식 및 조각사를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014년 2월 3일 문화재청에서 보물 지정을 예고하였다.연합뉴스 : 농경문 청동기·이차돈 순교비 보물지정 예고, 뉴시스 : '경주 이차돈 순교비' 보물 지정 예고, 서울신문 : 농경문 청동기·이차돈 순교비 보물 예고, 국민일보 : 농경문 청동기·이차돈 순교비 보물로 지정 하지만 워낙 보물 등재 예정 문화재가 밀려 있는 상황이라 2019년 12월 현재까지도 아직 지정 대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