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의 왕자 계양군 桂陽君 | ||
계양군(桂陽君)[1] | ||
충소(忠昭) | ||
전주(全州) | ||
증(璔) | ||
현지(顯之) | ||
부왕 | ||
생모 | 신빈 김씨(愼嬪 金氏) | |
부인 | 정선군부인 청주 한씨(淸州 韓氏) | |
자녀 | 4남 4녀 | |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 |
생몰 기간 |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세종대왕의 총애가 지극했다고 하며, 학문을 즐기고 글씨에 능하였다.
단종 재위 당시 한명회와 한확 등과 함께 세조의 일파가 되어, 안평대군이 지지기반을 잃고 힘이 약해진 틈을 타 그를 무고하여 유배보냈다. 안평대군은 교동도로 유배당하고 그곳에서 쓸쓸히 사사당하였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계양군 이증은 그 공으로 1456년(세조 2년) 좌익공신 1등에 책록된 뒤부터 세조의 측근에서 서무(庶務)의 출납을 맡아 크게 신임을 얻었다.
1460년 당시 세자였던 예종이 장순왕후와 혼인할 때 가례도감 제조를 겸하였다. 4년 후 1464년 사망하였다.
단종 재위 당시 한명회와 한확 등과 함께 세조의 일파가 되어, 안평대군이 지지기반을 잃고 힘이 약해진 틈을 타 그를 무고하여 유배보냈다. 안평대군은 교동도로 유배당하고 그곳에서 쓸쓸히 사사당하였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계양군 이증은 그 공으로 1456년(세조 2년) 좌익공신 1등에 책록된 뒤부터 세조의 측근에서 서무(庶務)의 출납을 맡아 크게 신임을 얻었다.
1460년 당시 세자였던 예종이 장순왕후와 혼인할 때 가례도감 제조를 겸하였다. 4년 후 1464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