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이안 포터필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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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축구감독 | ||
이름
| 존 이안 포터필드
John Ian Porterfield | |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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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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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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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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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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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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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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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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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선수시절
3. 감독으로
3.1. 부산 감독 시절
파일:5h2323b.jpg
부산에 온 포터필드는 2004년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에 이어 2005년 K리그전기리그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려놓는 등, 부산을 일명 대우시절[2] 이후 짧은 중흥기를 맛보게 해준다. 이 당시 조선일보에서 조 본프레레의 후임 감독으로 포터필드를 밀기도 했다. 그러나 전기리그 우승을 한 뒤 선수들의 나태와 포터필드식 4-4-2 전술의 핵심 선수인 박준홍이 시즌아웃당한 이후 제대로 추락하기 시작, 다음해인 2006년까지 26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나름 대기록을 세웠다. 아챔 4강또한 구단이 모처럼 야심차게 준비한 구덕운동장 홈경기에서 알 이티하드에게 5-0으로 개박살나는 참사가 벌어졌다. 결국 2006시즌들어서도 6경기동안 무승행진을 끊지 못하자 사퇴했다.[3]
부산 프런트를 설득하여 부산 구단의 연습구장과 클럽하우스를 세우는 업적을 남겼다. 김우중은 축구단에 빵빵한 지원을 했지만 이쪽엔 별 관심이 없었던 건지[4] 대우 로얄즈 선수들은 동아대학교나 동의대학교축구장을 빌려서 연습했고, 이건 이후 부산에 들어온 현대산업개발도 마찬가지였는데, 포터필드 감독이 이런 인프라의 구축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것.
부산에 온 포터필드는 2004년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에 이어 2005년 K리그전기리그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려놓는 등, 부산을 일명 대우시절[2] 이후 짧은 중흥기를 맛보게 해준다. 이 당시 조선일보에서 조 본프레레의 후임 감독으로 포터필드를 밀기도 했다. 그러나 전기리그 우승을 한 뒤 선수들의 나태와 포터필드식 4-4-2 전술의 핵심 선수인 박준홍이 시즌아웃당한 이후 제대로 추락하기 시작, 다음해인 2006년까지 26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나름 대기록을 세웠다. 아챔 4강또한 구단이 모처럼 야심차게 준비한 구덕운동장 홈경기에서 알 이티하드에게 5-0으로 개박살나는 참사가 벌어졌다. 결국 2006시즌들어서도 6경기동안 무승행진을 끊지 못하자 사퇴했다.[3]
부산 프런트를 설득하여 부산 구단의 연습구장과 클럽하우스를 세우는 업적을 남겼다. 김우중은 축구단에 빵빵한 지원을 했지만 이쪽엔 별 관심이 없었던 건지[4] 대우 로얄즈 선수들은 동아대학교나 동의대학교축구장을 빌려서 연습했고, 이건 이후 부산에 들어온 현대산업개발도 마찬가지였는데, 포터필드 감독이 이런 인프라의 구축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것.
4. 이후
아르메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았다. 2007년 유로 2008 지역예선 경기에서 스콜라리가 이끌던 강호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하는 파란을 연출하며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2007년 7월 암이 악화되면서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그해 9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
선더랜드 AFC는 포터필드에게 레전드의 예우를 표하며 유해를 홈구장인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아래 안장하였다.
선더랜드 AFC는 포터필드에게 레전드의 예우를 표하며 유해를 홈구장인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아래 안장하였다.
5. 기타
알렉스 퍼거슨과 절친이였으며 퍼거슨에게 한국의 유망주를 소개하기도 했다.
부산 감독을 맡을 당시 "축구는 신사의 스포츠"를 강조하면서 선수들이 이동할때 정장을 착용하게 하였으며, 그가 떠난 후에도 부산 선수들은 각종 행사에서 정장을 입는다.
케이 리그 외국인 감독 중에서는 2번째로 오래 감독 생활을 했다. 1위는 포항의 파리아스, 3위는 서울의 귀네슈 감독.
부산 감독 시절 그가 가장 높게 평가했던 선수는 김용대.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빅리그로 갈 수 있는 재능이라고 칭찬했다.
부산에 부임 후 존, 마스덴, 쿠키 등 영국 출신의 용병 선수들을 영입 후 기용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케이 리그에는 영국 출신 선수들이 드물기에 이는 작은 화제였다.
부산 감독을 맡을 당시 "축구는 신사의 스포츠"를 강조하면서 선수들이 이동할때 정장을 착용하게 하였으며, 그가 떠난 후에도 부산 선수들은 각종 행사에서 정장을 입는다.
케이 리그 외국인 감독 중에서는 2번째로 오래 감독 생활을 했다. 1위는 포항의 파리아스, 3위는 서울의 귀네슈 감독.
부산 감독 시절 그가 가장 높게 평가했던 선수는 김용대.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빅리그로 갈 수 있는 재능이라고 칭찬했다.
부산에 부임 후 존, 마스덴, 쿠키 등 영국 출신의 용병 선수들을 영입 후 기용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케이 리그에는 영국 출신 선수들이 드물기에 이는 작은 화제였다.
[1] 당시 선더랜드는 2부리그 팀이였고, 리즈는 리즈 유나이티드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당시 진짜 리즈시절을 달리고 있던 팀이였다.[2] 부산에서 축구가 야구보다 인기가 더 많던 시절인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을 말한다.[3] 문제는 포터필드의 후임이자 부산 팬들의 최악의 흑역사 감독인 앤디 에글리 감독 지휘 아래서 팀은 더 부진을 겪었다는 거다. 36경기 20득점을 찍던 에이스 뽀뽀를 마음에 안든다고 보내버리는 등의 무리수를 두었다. 풋케위키에선 아예 대놓고 스위스 출신의 사기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름 부산에 대한 애정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부산 경기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입장권을 나눠주는 등, 관중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했다.[4] 이것이 바로 박태준과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박태준은 한국 최초의 축구전용 구장과 역시 한국 최초의 클럽하우스를 세우는 등 이런 기초적인 인프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