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이스라엘 셰켈의 전신이 되는 통화이자 사실상 현대 이스라엘의 첫 통화. ISO 4217코드가 등장하기 전에 셰켈로 교체된지라 코드가 없다. 전신은 팔레스타인 파운드(פונט פלשתינאי, 푼트 팔레스티나이)인데 임시통화의 성격이 강해 같은 부류로 취급한다. 보조단위로는 프루타(Pruta(h), 1/1000. mil(밀)이라고도 한다.)를 쓰다가 아고라(Agora(h), 1/100)로 변경했었다. 복수형은 각기 리롯(Lirot), 프루톳(Prutot), 아고롯(Agorot)처럼 어미가 -ot로 바뀐다. 기호는 ל"י를 썼지만 대외표기인 £도 흔했다. (타 파운드화와 구분시 I£)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의 일방적(?)[2] 예루살렘과 웨스트뱅크 및 가자지구를 영역으로 하는 건국선포와 맞추어 배포되었다. 미국과 영국이 빽을 잘 조성해주었던 배경에 파운드 스털링과 동일한 환율값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73년 이후로 급속한 물가상승에 시달리게 되면서 화폐의 가치가 급속하게 떨어졌고 결국 1980년을 기점으로 셰컬로 교체되었다.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의 일방적(?)[2] 예루살렘과 웨스트뱅크 및 가자지구를 영역으로 하는 건국선포와 맞추어 배포되었다. 미국과 영국이 빽을 잘 조성해주었던 배경에 파운드 스털링과 동일한 환율값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73년 이후로 급속한 물가상승에 시달리게 되면서 화폐의 가치가 급속하게 떨어졌고 결국 1980년을 기점으로 셰컬로 교체되었다.
2. 0차 (팔레스타인 파운드)[편집]
3. 1차[편집]
1955년 등장.
4. 2차[편집]
1968년 등장.
앞면 | 뒷면 | ||
5ל"י | 핵 원자로 (나할 소렉 지방) | ||
10ל"י | 하임 나흐만 비알릭 | 비알릭의 집 (텔아비브) | |
50ל"י | 하임 웨이즈만 | 이스라엘 국회의사당 (네셋) | |
100ל"י | 테오도르 헤르츨 박사 | 메노라 (이스라엘 12부족의 상징) 이미지 | |
5. 3차[편집]
1973년 등장. 이후 셰켈과 10리라/셰켈 비율로 화폐개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