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끔살 명령 장면들을 모아놓은 짤방. 물론 당시엔 큰 잘못을 저지르면 참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지만, 삼국지연의 이후부터 중도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한 조조의 단점을 드러내는 인물평이기도 하다.[1] 사실은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기 이전에는, 조조도 동탁과 같은 폭군으로만 인식되었다.[2] 이 짤방은 도무지 용서가 안되는 경악스러운 상황에서 사용된다.
분명히 한 시대를 풍미한 호걸이지만 상당히 잔인했던 조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짤방이다. 이 짤방은 조비와 조조의 닮은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져서 조비를 깔 때도 쓰인다.
분명히 한 시대를 풍미한 호걸이지만 상당히 잔인했던 조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짤방이다. 이 짤방은 조비와 조조의 닮은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져서 조비를 깔 때도 쓰인다.
2. 예시[편집]
위 짤방에 나와있는 상황들은 다음과 같다.(상-하, 좌-우 순)
"이놈의 목을 쳐라!"감택이 황개의 계략으로 거짓 항복을 하러 왔을 때, 조조가 황개의 (거짓) 편지를 읽어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여 감택을 처형하라고 말한다. 조조 입장에서는 불행히도 감택의 교묘한 거짓말로 이를 믿고 마는데 결국은 뼈저린 패배를 맛보게 된다.
25권 <적벽의 전초전>
"에잇, 전부 목을 베라!"
좌자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했지만 좌자가 신통력을 부려 5백명의 좌자가 잡혀온다. 조조는 좌자가 또 도술을 부렸다고 말하며 전부 목을 베라고 한다. 이렇게 참수당한 좌자들이 다시 목이 붙어 기괴하게 웃는 광경을 본 조조는 실신하고 만다.
37권 <위와 오의 격돌>
3. 나관중의 일방적인 악평인가?[편집]
현대에는 유비나 손권에 비해서, 조조에 대한 악평만 나관중에 의해서 왜곡당했다는 평가가 나도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조조는 서주 대학살이라는 뻘짓을 저지른 시점부터 역사에 남을 악명을 지니고 있었다. 단, 당대에는 학살에 의한 정치적인 영향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대륙에 이름난 명사 한두명을 죽인 것이 문제였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만 그랬다는 것이지, 조조의 편이 되어줄 수 있었던 천하의 인재들이 대거 남하하고, 대륙이 3개의 나라로 갈라진 계기를 서주대학살에서 찾는 연구자들이 많긴 하다. 과연 유비와 손권의 1등 서포터.[12] 이것이 특정 세력(?)의 왜곡이었다면 모를까, 망탁조의라는 말에서 보듯이 조조는 무려 10세기 동안 높으신 분들 중에서도 치사한 이미지를 대변했다. 조조의 대표적인 실패들이 특정한 약소자들을 처리할 때 생겨난 나비 효과였음을 감안하면, 삼국지연의에서 묘사한 조조는 단점에 대한 최소한의 인물평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조조는 특정한 군벌들 앞에서는 국가를 통합할 만한 영웅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특별한 명분이 없는 사건을 처리할 때는, 호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실책을 반복했다. 서주대학살로 역사에 남을 악명을 남긴다던가, 자신의 제일 가는 모사였던 순욱을 인격적으로 차갑게 처리했다던가, 장송을 홀대했다가 유비에게 촉을 헌납하는 등등. 다른 창업군주들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지만, 조조의 경우는 이러한 실수가 통일을 못한 이유로도 꼽히니, 후대 기록들이 조조를 왜 이렇게 평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이런 평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문서를 보고 있는 여러분이 일반 백성일 경우를 생각해보자. 설령 능력을 인정받아 조조에게 기용되었고 조위세력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치자. 끝까지 살아남아 무사히 천수를 누릴 확률이 높을지, 단물만 홀라당 빨아먹히고 숙청 당할 확률이 높을지를 생각해보자. 삼국지연의가 쓰여지기 이전의 사람들이 조조에게서 느낀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조의 악행에 대한 축소는 오히려 현대 중국에서 시작된 유행에 가깝다. 조조 영웅관이 대중문화에서 극치를 이룬 시기는 마오쩌둥 치세의 중국이었다. 마오쩌둥은 조조의 초반부 행보를 자신의 빨치산 활동이랑 비교하기도 했는데 당연히 마오쩌둥의 일대기를 소설처럼 숭상했던 중국에서도 대대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졌다.문화대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가 간다.오히려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일본, 한국에서는 그때 만들어진 마오쩌둥-조조 사관이 화교들에 의해서 대중문화에 전파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오덕계에 대표적인 조조빠를 양산한 만화인 창천항로의 원작자를 생각해보자.
조조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당대의 흐름을 파악했던 역사가들의 평가를 지나치게 무시한 결과인 것이다. 실제로 조조는 황제(=만인의 지도자)라는 목표가 아니라, 단순히 권세를 지닌 귀족 위정자라는 심리를 품고 행동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랬다면 서주에서 대학살을 저지르거나, 백성들의 원망을 알면서도 이미지에서 손을 놓지는 않았을 테니. 이 때문에 조조를 일반적인 창업군주가 아니라, 전형적인 환관-귀족적인 정치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조조가 통일을 못했다거나, 유비 세력이 커진데는 그 자신의 인성 문제를 짚지 않을 수가 없는 셈이다. 결국, 조조가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사람들에게 냉랭했던 것처럼,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감정도 좋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10세기나 까였으니 불쌍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그 정도로 까일만큼 스스로 어그로를 자초한 면도 있는 셈. 참고로, 조조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 역시도 현대에 조금 더 깊게 다루어지는 감이 있다. 이는 조조가 통일을 실패했던 과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를 무작정 영웅으로 평가하는 여론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조조는 특정한 군벌들 앞에서는 국가를 통합할 만한 영웅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특별한 명분이 없는 사건을 처리할 때는, 호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실책을 반복했다. 서주대학살로 역사에 남을 악명을 남긴다던가, 자신의 제일 가는 모사였던 순욱을 인격적으로 차갑게 처리했다던가, 장송을 홀대했다가 유비에게 촉을 헌납하는 등등. 다른 창업군주들도 비슷한 실수를 했다지만, 조조의 경우는 이러한 실수가 통일을 못한 이유로도 꼽히니, 후대 기록들이 조조를 왜 이렇게 평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이런 평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문서를 보고 있는 여러분이 일반 백성일 경우를 생각해보자. 설령 능력을 인정받아 조조에게 기용되었고 조위세력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치자. 끝까지 살아남아 무사히 천수를 누릴 확률이 높을지, 단물만 홀라당 빨아먹히고 숙청 당할 확률이 높을지를 생각해보자. 삼국지연의가 쓰여지기 이전의 사람들이 조조에게서 느낀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조의 악행에 대한 축소는 오히려 현대 중국에서 시작된 유행에 가깝다. 조조 영웅관이 대중문화에서 극치를 이룬 시기는 마오쩌둥 치세의 중국이었다. 마오쩌둥은 조조의 초반부 행보를 자신의 빨치산 활동이랑 비교하기도 했는데 당연히 마오쩌둥의 일대기를 소설처럼 숭상했던 중국에서도 대대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조조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당대의 흐름을 파악했던 역사가들의 평가를 지나치게 무시한 결과인 것이다. 실제로 조조는 황제(=만인의 지도자)라는 목표가 아니라, 단순히 권세를 지닌 귀족 위정자라는 심리를 품고 행동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랬다면 서주에서 대학살을 저지르거나, 백성들의 원망을 알면서도 이미지에서 손을 놓지는 않았을 테니. 이 때문에 조조를 일반적인 창업군주가 아니라, 전형적인 환관-귀족적인 정치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조조가 통일을 못했다거나, 유비 세력이 커진데는 그 자신의 인성 문제를 짚지 않을 수가 없는 셈이다. 결국, 조조가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사람들에게 냉랭했던 것처럼,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감정도 좋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10세기나 까였으니 불쌍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그 정도로 까일만큼 스스로 어그로를 자초한 면도 있는 셈. 참고로, 조조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 역시도 현대에 조금 더 깊게 다루어지는 감이 있다. 이는 조조가 통일을 실패했던 과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를 무작정 영웅으로 평가하는 여론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1] 원래는 참수형이 징역살이나 귀양으로도 용서받지못할 수준의 죄나 지었거나 죽어 마땅한 흉악범들이나 국가를 전복시킬려는 역적들에 한해서만 가능하지 조조처럼 무작정 목을 베라고 하지 않는다. 게다가 여백사의 집에 머물다가 그의 가족들이 자기를 동탁에게 팔아넘길려고 한걸로 착각해서 무작정 배신자로 몰아 살해하고 이 상황을 모르고있는 여백사까지 죽인데다 자신을 치료해줄려는 화타도 치료하는척 하면서 자신을 암살할것이라는 망상과 의심병에 빠져 참수형에 처한 전적이 있으며 조조 본인의 인생에서 최악의 흑역사라고 할수있는 서주 대학살의 사례를 봐도 조조가 난세의 간웅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인간불신이 심한 인물이라는걸 보여주고있다. 정작 해당 삼국지에서는 서주 대학살에 대한 묘사가 생략되었다.[2] 망탁조의 참고.[3] 조비의 경우 자기 아버지보다 더 심한 일을 저질러서 개그 소재로 자주 쓰인다. 친척이면서 국가공신인 좌절감으로 큰 사나이 친삼촌을 돈 안 빌려줬다는 이유로 죽이려 하고, 자기 동생들을 박대했고, 첩을 총애하다가 조강지처에게도 사약을 날리고[4], 최고의 숙장 한명을 괴롭혀서 분사시키거나, 개국공신의 조카를 네크로필리아로 만들어서 죽게 만들거나, 신하의 고통스러운 과거인 인육섭취를 들먹이며 조롱했던 적도 있으니 아버지보다 째째하다고 놀림받을 수 밖에.[4] 게다가 이쪽은 남의 마누라를 빼앗아온 케이스다.[5] 조조에게 실망하고 죽이려다 실패한 건 같지만 연의와 다르게 한동안 조조와 동행한다.[6] 이때 양수가 조조의 뜻을 읽은 과거 회상, 그 중에서 양수를 죽이기로 결심하게 된 후계자 책봉 문제까지 나온다.[7] 이 때 조조는 동탁을 암살하는 데 실패하여 수배령이 떨어졌다가 진궁이 구출하여 도망치던 중이었다.[8] 일족'과'가 맞는데 오타가 났다.[9] 형을 집행하는 장교도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다행으로 알아라"며 빈정댔다.[10] 물론 어이없을만하긴 하다. 져놓고 적장을 칭송해대니 조조 아니라 그 누구라 하더라도 패장 주제에 졌으니 제발 죽여주십쇼 해도 모자랄 판국에 적장이나 칭찬해대고 있으니(...).[11] 연의 원작에서는 공융이 이 발언을 하지만, 만화에서는 누구인지 직접 설명이 없다.[12] 이건 취소선 쳤지만 절대로 드립이 아니다. 서주 출신 중에서 두 세력의 중진들은 물론 총사령관/재상급 인물도 많았기 때문. 대표적인 사례만 읊어봐도 유비 수하의 제갈량, 손권 수하의 장소, 노숙, 제갈근 등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