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衛)나라 47대 국군 자남씨(子男氏) 위나라 4대 군주 원군 元君 | |||
희(姬) | |||
자남(子南) | |||
실전 | |||
아버지 | 위회군(衛懷君) 희공기(姬公期)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241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252년 ~ 기원전 241년 | |
1. 소개[편집]
2. 생애[편집]
위 회군 41년(기원전 252년), 아버지 위 회군이 위 안희왕의 손에 죽자, 위 안희왕은 위 회군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위인 위 원군을 위(衛)나라의 국군으로 세웠다.
위 원군 12년(기원전 241년), 진(秦)나라가 위(魏)나라의 동쪽을 차지하고, 그곳에 동군(東郡)을 두었다. 그리고 위 원군을 야왕현(野王縣)에 옮기고 복양(濮陽)에 복양현(濮陽縣)을 설치했다.[1] 이 도중 진(秦)나라 사람들이 위 원군을 살해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는 위군 각이 이었다.[2]
위 원군 12년(기원전 241년), 진(秦)나라가 위(魏)나라의 동쪽을 차지하고, 그곳에 동군(東郡)을 두었다. 그리고 위 원군을 야왕현(野王縣)에 옮기고 복양(濮陽)에 복양현(濮陽縣)을 설치했다.[1] 이 도중 진(秦)나라 사람들이 위 원군을 살해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는 위군 각이 이었다.[2]
[1] 삼국지에서 조조(曹操)와 여포(呂布)의 격전지인 복양이 바로 이 복양현이다.[2] 야왕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갑자기 죽었다니 진(秦)나라 측에서 죽인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죽음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