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연표[편집]
메이지 18년 (1885) | 0세 | 휴가시 도고 마을에서 태어나다. |
메이지 29년 (1896) | 11세 | 츠보야 심상 소학교를 졸업한다. |
메이지 37년 (1904) | 19세 | 미야자키 현립 노베오카 중학교를 졸업한다.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진학한다. |
메이지 41년 (1908) | 23세 |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녀가집 『바다 소리(海の声)』를 출판한다. |
메이지 43년 (1910) | 25세 | 3번째 가집이자 대표작 『이별(別離)』을 출판한다. |
다이쇼 2년 (1913) | 28세 | 6번째 가집 『미나카미(みなかみ)』를 출판한다. |
다이쇼 7년 (1918) | 33세 | 11번째 가집 『쓸쓸한 수목(さびしき樹木)』을 출판한다. |
쇼와 3년 (1928) | 43세 | 43세로 타계 |
3. 작품[편집]
3.1. 단가[편집]
- 海の声(1908년 7월 출간)
- 独り歌へる(1910년 1월 출간)
- 別離(1910년 4월 출간)
- 路上(1911년 9월 출간)
- 死か芸術か(1912년 9월 출간)
- みなかみ(1913년 9월 출간)
- 秋風の歌(1914년 4월 출간)
- 砂丘(1915년 10월 출간)
- 朝の歌(1916년 6월 출간)
- 白梅集(1917년 8월 출간)
- さびしき樹木(1918년 7월 출간)
- 渓谷集(1918년 5월 출간)
- くろ土(1921년 3월 출간)
- 山桜の歌(1923년 5월 출간)
- 黒松(1938년 9월 출간)
3.2. 기행[편집]
- みなかみ紀行
- 木枯紀行
4. 대표 단가[편집]
얼마나 많은 산하 넘어 가며는 외로움이
다할 땅이런가 오늘도 나그네길 떠나네
幾山河越えさり行かば寂しさの終てなむ国ぞ今日も旅ゆく
흰 새는 외롭지 않은가 하늘의 파랑
바다의 파랑에도 물들지 않고 떠다니네
白鳥は哀しからずや空の青海のあをにも染まずただよふ
うら恋しさやかに恋とならぬまに別れて遠きさまざまな人
白玉の歯にしみとほる秋の夜の酒はしづかに飲むべかりけり
たぽたぽと樽に満ちたる酒は鳴るさびしき心うちつれて鳴る
足音を忍ばせて行けば台所にわが酒の壜は立ちて待ちをる
うす紅に葉はいちはやく萌えいでて咲かむとすなり山ざくら花
5. 매체에서[편집]
6. 기타[편집]
1927년 아내와 함께 약 2개월 간 조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가 보낸 엽서를 보면 조선을 마음에 들어했음을 알 수 있다.[2] 진도나 금강산 등을 보며 생애에서 제일 긴 여행을 했지만, 여행 이후 몸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결국 생애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하루 한 되 양이 되는 술을 마시던 주당이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주 원인이 간경변인데, 사후에 얼마간 썩는 냄새가 나지 않아 '산 채로 알코올에 절여진 게 아닌가' 하고 의사가 경탄한 일화로 유명하다.
1911년 이시카와 다쿠보쿠와 알게 되고, 1912년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임종할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와카야마 보쿠스이가 쓴 수필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임종"에서 그 때 상황을 조금 알 수 있는데, 그의 용태가 나빠졌을 때 보쿠스이는 다쿠보쿠의 6살난 딸을 데리고 오지만 그는 이미 아버지와 아내 품에서 절명했다고 한다.
하루 한 되 양이 되는 술을 마시던 주당이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주 원인이 간경변인데, 사후에 얼마간 썩는 냄새가 나지 않아 '산 채로 알코올에 절여진 게 아닌가' 하고 의사가 경탄한 일화로 유명하다.
1911년 이시카와 다쿠보쿠와 알게 되고, 1912년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임종할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와카야마 보쿠스이가 쓴 수필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임종"에서 그 때 상황을 조금 알 수 있는데, 그의 용태가 나빠졌을 때 보쿠스이는 다쿠보쿠의 6살난 딸을 데리고 오지만 그는 이미 아버지와 아내 품에서 절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