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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양정모(梁正模, Yang Jungmo) |
국적 | |
출생 | |
학력 | 동아대학교 체육학과 |
종목 | |
체급 | 자유형 -62kg |
신체 | 166cm, 62kg |
1. 소개[편집]
2. 선수 경력[편집]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3] 대한민국에 8.15 광복 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그리고 이 기록으로 병역특혜를 받았는데 1973년 특혜가 제정된 후 최초로 병역특례를 받았다고 한다. 1974년에 이어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레슬링 경기에서도 우승해 2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다.
3. 은퇴 이후[편집]
4.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 ||
금메달 | -62kg | |
세계선수권 | ||
은메달 | 1978 멕시코시티 | -74kg |
동메달 | 1975 민스크 | -62kg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62kg | |
금메달 | -62kg | |
아시아선수권 | ||
동메달 | 1979 잘란다르 | -62kg |
[1] 이 덕분에 부산 사직종합운동장에 그의 이름을 딴 실내훈련장도 있다.[2] 다만 북한의 권투 선수 구영조와 같은 날에 우승이 확정되어, 5번째인지 6번째인지는 시각을 따져야 한다. 첫 번째는 손기정(일본 국적), 두 번째는 새미 리(미국 국적), 세 번째는 리호준(북한 국적), 네 번째는 넬리 킴(소련 국적). 또한 새미 리와 넬리 킴은 금메달을 2개 이상 딴 선수이기 금메달 개수로 따지면 더 늦다.[3] 2위인 몽골 선수를 이긴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졌다. 당시 레슬링은 리그전으로 하되 승패의 유형에 따라 벌점을 받고(폴승이나 큰 점수차 승리를 해야만 안 받으며 판정승도 작게나마 받는다.) 리그 도중 벌점이 일정 수준 누적되면 탈락하는 방식이다. 이러면서 살아남은 선수들끼리 리그를 계속하였다. 생존자가 3명이 되는 순간부터는 다른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얻은 벌점은 무시하고, 탈락이 없어지면서 이들끼리 경기에서 얻은 벌점만 계산하여 1, 2, 3위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생존자가 4명 이상이었다가 여러 명이 같은 라운드에서 탈락하여 2명 이하가 될 때는 직전 탈락자 중 누적 벌점이 적은 순서대로 부활하여 3명을 채웠다.) 최후의 세 선수가 물고 물렸지만 양정모의 벌점이 가장 적어서 1위가 됐다. 양정모와 몽골 선수와의 경기가 가장 마지막이라서 자기와 나머지 두 생존 선수의 벌점을 고려한 경우의 수 다 따져보고 무리하게 이기려고는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