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목조의 왕자 안원대군 安原大君 | ||
안원대군(安原大君) | ||
충장(忠壯) | ||
전주(全州) | ||
진(珍) | ||
국서(國瑞) | ||
부왕 | ||
모후 | 효공왕후 이씨 (孝恭王后 李氏) | |
부인 | 평산부부인 평산 신씨(平山府夫人) | |
자녀 | 2남 | |
묘소 | ||
생몰 기간 | ? ~ ? |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3. 묘소[편집]
묘소는 원래 경흥군 서쪽 복룡사였으나, 실전되어 영흥군 억기면 미양리 종가 부근에 사당을 세우고, 매년 10월 중정(中丁)에 부부인과 함께 봉사(奉祀)해 왔다.
4. 가족관계[편집]
5. 후손[편집]
함경도 경흥, 함주, 회령, 내대, 운전, 송대, 회령, 영흥, 덕원 등지에서 살았으며 1400년 경 3대손인 증손자 동남군 춘흥은 평안북도 정주군 고덕면 일신동 신리로 이주하였다.
정주시에 자리 잡은 뒤 몇 세대 지나 서북 지역 주민에게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허가한 1650년(효종 1)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후손들이 과거에 응시하여 문과 23명, 무과 6명이 급제하여 종2품으로부터 종6품까지의 관직에 62명이 고관대작을 지냈다. 또 효행으로써 7명이 정려를 받았고 10명의 진사도 배출되었다.
이주한 지 7세대가 지나는 동안, 자손이 많아져 서로의 가문계통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어, 분파하여 가계를 통괄하기 쉽도록 하였다.
동해군의 후손 중 한 명인 이제마는 의서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를 썼다. 다른 후손으론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소설가인 이광수와 역시 소설가 이효석이 있다.
정주시에 자리 잡은 뒤 몇 세대 지나 서북 지역 주민에게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허가한 1650년(효종 1)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후손들이 과거에 응시하여 문과 23명, 무과 6명이 급제하여 종2품으로부터 종6품까지의 관직에 62명이 고관대작을 지냈다. 또 효행으로써 7명이 정려를 받았고 10명의 진사도 배출되었다.
이주한 지 7세대가 지나는 동안, 자손이 많아져 서로의 가문계통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어, 분파하여 가계를 통괄하기 쉽도록 하였다.
동해군의 후손 중 한 명인 이제마는 의서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를 썼다. 다른 후손으론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소설가인 이광수와 역시 소설가 이효석이 있다.
[1] 진짜 있는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