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안드레아스 쾨프케의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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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Deutsche Fußballnationalmannschaft | ||
이름 | 안드레아스 쾨프케 Andreas Köpke | |
출생 | ||
국적 | ||
신체 | 키 182cm | |
직업 |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 |
소속 | 선수 | 홀슈타인 킬 (1979~1983) SCC 베를린 (1983~1984) 헤르타 BSC (1984~1986) 1. FC 뉘른베르크 (1986~1994) E. 프랑크푸르트 (1994~1996)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6~1999) 1. FC 뉘른베르크 (1999~2001) |
지도자 | ||
국가대표 | 59경기 (독일 / 1990~1998) | |
1. 개요[편집]
2. 선수 생활[편집]
상대적으로 뒤늦게 빛을 본 대기만성형의 선수로 1979년 홀슈타인 킬에서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해 1990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승선하기까지 무려 11년이 걸렸다. 독일이 통산 세번째 우승을 차지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당당히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 시기 독일의 주전 수문장은 보도 일그너였기에 서브 골키퍼로의 역할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1993년 독일 올해의 선수로 선정될만큼 훌륭한 실력을 소속 클럽에서는 선보였지만, UEFA 유로 1992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주전은 변함없이 일그너였고, 게다가 일그너가 그보다 무려 5살이나 젊었기에 이 분들처럼 국가대표에서는 평생 후보로 만족해야 할 것처럼 보였지만 1994년 월드컵 8강에서의 충격적인 탈락 이후 일그너가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에게 드디어 서광이 빛추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UEFA 유로 1996에서 눈부신 선방을 보여주면서[2] 독일의 우승을 이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1996년 유럽 올해의 골키퍼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이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서서히 침체기로 빠져들고 있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0으로 참패를 당한 직후 국가대표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UEFA 유로 1996때와는 다르게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예선전 유고슬라비아전에서 알까기로 실점을 허용하는 듯 다소 각 떨어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마티아스 잠머가 부상으로 빠진 녹슨 수비진이 더 문제였고, 크로아티아전은 크리스티안 뵈른스의 퇴장이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게다 실점한 중거리포들도 너무 말도안되게 바운드까지 먹어서 구석으로 가는 역사적인 럭키슛들이었고 아마 당시 잘나가던 캄포스, 파비앵 바르테즈, 에드빈 판데르사르도 어쩔 수 없이 먹혔을만한 상황이지만 3실점 탈락이라는 멍에를 혼자 뒤집어쓰고 말았다. 당시 경기 중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골대를 후려치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3] 그리고 그 결과로 쾨프케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에서 거의 10년 동안 벤치만 달구던 한 맺힌 굇수가 수문장으로 등장하는데...
한편 클럽 커리어 상으로는 대부분의 시기를 1. FC 뉘른베르크에서 보낸 뉘른베르크의 레전드 출신이다. 덕분에 나중에 뉘른베르크의 홍보 담당 대사를 맡기도... 뉘른베르크 외에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전성기의 한 자락을 보냈으며 2001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에서 은퇴한다.
처음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UEFA 유로 1996에서 눈부신 선방을 보여주면서[2] 독일의 우승을 이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1996년 유럽 올해의 골키퍼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이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서서히 침체기로 빠져들고 있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0으로 참패를 당한 직후 국가대표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UEFA 유로 1996때와는 다르게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예선전 유고슬라비아전에서 알까기로 실점을 허용하는 듯 다소 각 떨어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마티아스 잠머가 부상으로 빠진 녹슨 수비진이 더 문제였고, 크로아티아전은 크리스티안 뵈른스의 퇴장이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게다 실점한 중거리포들도 너무 말도안되게 바운드까지 먹어서 구석으로 가는 역사적인 럭키슛들이었고 아마 당시 잘나가던 캄포스, 파비앵 바르테즈, 에드빈 판데르사르도 어쩔 수 없이 먹혔을만한 상황이지만 3실점 탈락이라는 멍에를 혼자 뒤집어쓰고 말았다. 당시 경기 중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골대를 후려치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3] 그리고 그 결과로 쾨프케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에서 거의 10년 동안 벤치만 달구던 한 맺힌 굇수가 수문장으로 등장하는데...
한편 클럽 커리어 상으로는 대부분의 시기를 1. FC 뉘른베르크에서 보낸 뉘른베르크의 레전드 출신이다. 덕분에 나중에 뉘른베르크의 홍보 담당 대사를 맡기도... 뉘른베르크 외에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전성기의 한 자락을 보냈으며 2001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에서 은퇴한다.
3. 은퇴 이후[편집]
2004년부터 지금까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맡으며 독일 국가대표의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헤르타 BSC의 감독으로 임명되자 그를 따라 헤르타의 골키퍼코치도 맡고있다.
4. 여담[편집]
- 아들인 파스칼 쾨프케도 축구선수인데, 현재 1. FC 뉘른베르크에서 뛰고 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2. 분데스리가: 2000-01
5.2. 개인 수상[편집]
-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1993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96
-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1987-88, 1992-93, 1994-95
-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 1996
- IFFHS 세계 최우수 골키퍼: 1996
[1] 일그너는 1990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어린 나이에 독일 대표팀 주전 넘버원을 차지 했지만 1994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하향세에 접어들면서 쾨프케에게 주전자리를 내주었다.[2] 특히나 잉글랜드와의 4강 경기에서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잉글랜드에게 밀렸지만 안정적으로 골문을 지킨데 이어 승부차기에서 가레스 사우스게이트의 슛을 막으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3] 사실 3골이나 먹히긴 했지만 쾨프케가 뭘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뵈른스가 백태클로 한 큐에 레드카드를 먹고 퇴장당한 수적열세의 상황에서 야르니와 블라오비치의 대각선 중거리 슈팅도 도무지 막을 수 없는 구석으로 꽂혀들어가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