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모레 모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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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모레 모레이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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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축구감독
이름
아이모레 모레이라
Aymoré Moreira
출생
사망
국적
신체
키 172cm
직업
소속
선수
아메리카 FC(1932~1933)
팔레스트라 이탈리아(1934~1935)
보타포구 FR(1936~1941)
플루미넨시 FC(1941)
보타포구 FR(1941~1946)
감독
올라리아 아틀레치쿠 클루비(1948~1949)
방구 AC (1950)
상크리스토방 FR(1951)
SE 파우메이라스(1951~1952)
산투스 FC(1952)
포르투게자(1953)
브라질 대표팀(1953)
SE 파우메이라스(1954~1957)
브라질 대표팀(1961~1963)
상파울루 FC(1962)
포르투게자(1962~1966)
SE 파우메이라스(1966~1967)
CR 플라멩구(1967~1968)
브라질 대표팀(1967~1968)
SC 코린치안스(1968)
포르투게자(1969~1970)
SC 코린치안스(1970~1971)
보아비스타 FC(1972~1974)
FC 포르투(1974~1975)
파나티나이코스 FC(1975~1976)
보타포구 FR(1977)
페호비아리아(1977)
크루제이루 EC(1977~1978)
EC 비토리아(1979)
EC 바이아(1981~1982)
갈리시아 EC(1983)
카투엔세 푸치볼(1984)
국가대표
미상(브라질 / 1932~1940)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브라질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1984년에 카투엔세 푸치볼 감독을 맡았다.

1962 칠레 월드컵 때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조국 브라질에 2번째 우승컵을 안긴 감독이다. 브라질 대표팀 감독이었던 제제 모레이라(Zezé Moreira)는 아이모레 모레이라의 친형이다.

2. 생애[편집]

모레이라는 윙어로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골키퍼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그리고 1932년부터 1940년까지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브라질 대표팀 선수로서 활약했다.

은퇴 후 모레이라는 3번이나 브라질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고, 두 번째 대표팀 감독 시절에 조국에 두 번째 월드컵을 안겨줬다. 결승전에서 가린샤와 아마리우두, 지투, 바바 등의 활약에 힘입어 체코슬로바키아를 3-1로 승리할 수 있었다. 모레이라는 브라질 대표팀 감독 시절에 61경기를 지휘했고 37승 9무 15패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파우메이라스, 산투스, 플라멩구, 크루제이루 EC 등 브라질의 명문팀과 코린치안스, 포르투, 파나티나이코스 등 해외 명문팀도 지휘하며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줬다.

그는 1998년 사우바도르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