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한[1] 칸국 حاجی ترخان خانلغی Хаҗитархан Ханлыгы | ||
위치 | 볼가 강 인근 | |
정치체제 | ||
국가원수 | ||
타타르어, 노가이어 | ||
종족 | 타타르족, 노가이족 | |
성립 이전 | ||
멸망 이후 | ||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킵차크 칸국이 내부 분열과 쇠퇴를 겪자 15세기 중반 크림 칸국, 카잔 칸국 등과 함께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였다. 킵차크 칸국의 왕족 카심 1세(قاسم بن محمود)는 아스트라한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한 것.
아스트라한은 동서방 교역로 사이에 위치한 도시였기 때문에 중개 무역이 번성했던 곳이었다. 카심 1세의 뒤를 이은 압둘 카림(عبد الکریم) 재위 이후 아스트라한 칸국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칸국을 통과하는 유목민들과의 무역을 번성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서 교역로 사이에 위치했다는 것은 때로 부작용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는데, 바로 이민족들의 잦은 침입이었다. 아스트라한 칸국은 대부분이 투르크 계열 유목민들이었고, 외부와의 전쟁이 있을 때마다 국가의 지도자인 칸 대신 각기의 부족장들이 나섰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권력이 꽤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1480년, 킵차크 칸국이 완전히 분열되자 킵차크 칸국과 평화 협약을 맺고 있던 아스트라한 칸국 역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크림 칸국과 노가이 칸국은 아스트라한 칸국을 침공했고, 이들과의 전쟁에서 아스트라한 칸국은 국력을 상당히 소모하게 되었다. 게다가 1552년 카잔 칸국을 점령한 루스 차르국의 이반 4세가 1556년을 군대를 이끌고 아스트라한을 침공하였다. 그리고 결국 루스에 병합되어 멸망하고 말았다.
아스트라한은 동서방 교역로 사이에 위치한 도시였기 때문에 중개 무역이 번성했던 곳이었다. 카심 1세의 뒤를 이은 압둘 카림(عبد الکریم) 재위 이후 아스트라한 칸국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칸국을 통과하는 유목민들과의 무역을 번성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서 교역로 사이에 위치했다는 것은 때로 부작용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는데, 바로 이민족들의 잦은 침입이었다. 아스트라한 칸국은 대부분이 투르크 계열 유목민들이었고, 외부와의 전쟁이 있을 때마다 국가의 지도자인 칸 대신 각기의 부족장들이 나섰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권력이 꽤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1480년, 킵차크 칸국이 완전히 분열되자 킵차크 칸국과 평화 협약을 맺고 있던 아스트라한 칸국 역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크림 칸국과 노가이 칸국은 아스트라한 칸국을 침공했고, 이들과의 전쟁에서 아스트라한 칸국은 국력을 상당히 소모하게 되었다. 게다가 1552년 카잔 칸국을 점령한 루스 차르국의 이반 4세가 1556년을 군대를 이끌고 아스트라한을 침공하였다. 그리고 결국 루스에 병합되어 멸망하고 말았다.
3. 기타[편집]
4. 관련 문서[편집]
[1] 타타르어로 하지타르한(Xacitarxan, حاجی ترخان). 타타르어의 җ는 /dʒ/ 발음이 난다. 오늘날에는 애스테르한(Ästerxan)으로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