محمد اشرف غني احمدزی Mohammad Ashraf Ghanī Ahmadzai 모하메드 아슈라프 가니 아흐마드자이 | |
출생일 | |
출생 | 아프가니스탄 왕국 로가르 주 |
국적 | |
부족 | |
학력 | |
직업 | |
배우자 | |
신체 | 170cm |
종교 | |
정당 | |
경력 | 아프가니스탄 재무부장관 제9대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
임기 | |
자녀 | 마리암, 타리크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949년, 아프가니스탄의 동부 로가르 주의 파슈툰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는데, 이 경험이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레바논에 소재한 아메리카 대학[1]에 진학하고 졸업한 뒤, 1977년에는 정부장학금으로 컬럼비아 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에는 UC버클리와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그 뒤 가니는 1991년 세계은행으로 이직하여 러시아 석탄 산업을 비롯해 중국, 인도등 아시아의 여러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자 가니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한다. 이는 24년 만의 귀국이었다. 이후에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이 출범하자 그는 재무장관으로 취임하여 조세 체계를 세우고 새 화폐 도입을 추진하는 등, 굵직한 일들을 도맡아 하게된다. 재무장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카불 대학교의 총장을 맡으며 세계은행 총재로 거론되기도 하고 UN 사무총장에도 도전을 하나 둘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9년에는 대선후보로 나갔으나 2.9%라는 절망적인 표를 받고 낙선, 하미드 카르자이가 49.67%로 재선된다.[2] 그 후에 가니는 대중에게 친근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친서방적인 모습을 버리고 아프가니스탄인 다운 모습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여 많은 이미지 변신을 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이름 뒤에 부족 이름인 '아흐마드자이'를 붙이고, 아프간 전통의상을 입으며 수염을 기르는 등 많은 것들을 바꿨다. 2014년 아프가니스탄 대선 때에는 전임 정부의 부정부패에 지친 대중들에게 부패척결을 주요 공약으로 삼아 활동하였고, 예전의 정치견해도 바꿔서 우즈벡계 군벌 압둘 라시드 도스툼을 자신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이 결정은 대중들에게 많은 충격을 줬는데, 예전에 가니는 그를 살인자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4민족(파슈툰계, 타지크계, 우즈벡계, 하자르계) 중 우즈벡 민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가니는 과거의 견해를 버리고 이런 결단을 내렸다. 이로인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도스툼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학살을 저지른 혐의와 전범재판에서 증인을 입막음 하기 위해 고문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슈라프 가니는 선거에서 이겼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자 가니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한다. 이는 24년 만의 귀국이었다. 이후에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이 출범하자 그는 재무장관으로 취임하여 조세 체계를 세우고 새 화폐 도입을 추진하는 등, 굵직한 일들을 도맡아 하게된다. 재무장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카불 대학교의 총장을 맡으며 세계은행 총재로 거론되기도 하고 UN 사무총장에도 도전을 하나 둘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9년에는 대선후보로 나갔으나 2.9%라는 절망적인 표를 받고 낙선, 하미드 카르자이가 49.67%로 재선된다.[2] 그 후에 가니는 대중에게 친근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친서방적인 모습을 버리고 아프가니스탄인 다운 모습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여 많은 이미지 변신을 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이름 뒤에 부족 이름인 '아흐마드자이'를 붙이고, 아프간 전통의상을 입으며 수염을 기르는 등 많은 것들을 바꿨다. 2014년 아프가니스탄 대선 때에는 전임 정부의 부정부패에 지친 대중들에게 부패척결을 주요 공약으로 삼아 활동하였고, 예전의 정치견해도 바꿔서 우즈벡계 군벌 압둘 라시드 도스툼을 자신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이 결정은 대중들에게 많은 충격을 줬는데, 예전에 가니는 그를 살인자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4민족(파슈툰계, 타지크계, 우즈벡계, 하자르계) 중 우즈벡 민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가니는 과거의 견해를 버리고 이런 결단을 내렸다. 이로인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도스툼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학살을 저지른 혐의와 전범재판에서 증인을 입막음 하기 위해 고문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슈라프 가니는 선거에서 이겼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