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는 아스카 시대 40대 덴무 덴노 시절에 오랫동안 궁중의 시녀로 황실을 섬겨온 인물이었다. 궁중에서 오랫동안 시녀로서 크게 활약하면서 상당한 힘이 있었으며, 황실에서 크게 신임받아 45대 쇼무 덴노의 유모가 되기까지 했다.
30대 비다츠 덴노의 후손인 미누 왕과의 사이에서 카쓰라기 왕(葛城王)과 사이 왕(佐爲王)을 낳았다. 하지만 694년에 미누 왕이 다자이노소치(大宰帥)로서 규슈(九州)로 부임해 간 뒤,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와 재혼해 후지와라노 아스카베히메(藤原 安宿媛)를 낳았다. 이 사람이 쇼무 덴노의 아내이자 후지와라 씨족 최초의 황후였던 코묘 황후다.
708년 11월 25일 대상제(大嘗祭를) 맞이해 43대 겐메이 덴노는 덴무 덴노 시절부터 충실히 궁중을 섬겨온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의 공적을 기리고자 귤나무 가지가 새겨진 잔을 하사하면서 타치바나(橘)라는 우지(氏)와 '스쿠네(宿禰)'라는 가바네(姓)를 하사했다. 그로 인해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는 타치바나노 미치요(橘 三千代)로 개명하였다.
타치바나노 미치요는 733년에 사망하였다.
30대 비다츠 덴노의 후손인 미누 왕과의 사이에서 카쓰라기 왕(葛城王)과 사이 왕(佐爲王)을 낳았다. 하지만 694년에 미누 왕이 다자이노소치(大宰帥)로서 규슈(九州)로 부임해 간 뒤,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와 재혼해 후지와라노 아스카베히메(藤原 安宿媛)를 낳았다. 이 사람이 쇼무 덴노의 아내이자 후지와라 씨족 최초의 황후였던 코묘 황후다.
708년 11월 25일 대상제(大嘗祭를) 맞이해 43대 겐메이 덴노는 덴무 덴노 시절부터 충실히 궁중을 섬겨온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의 공적을 기리고자 귤나무 가지가 새겨진 잔을 하사하면서 타치바나(橘)라는 우지(氏)와 '스쿠네(宿禰)'라는 가바네(姓)를 하사했다. 그로 인해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는 타치바나노 미치요(橘 三千代)로 개명하였다.
타치바나노 미치요는 733년에 사망하였다.
3. 사후[편집]
4. 가계[편집]
- 남편 : 미누 왕
- 장남 : 카쓰라기 왕葛城王 → 타치바나노 모로에橘諸兄
- 차남 : 사이 왕佐爲王 → 타치바나노 사이橘佐爲
- 남편 :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 不比等
- 장녀 : 후지와라노 아스카베히메藤原 安宿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