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역사
2.1. 여자영학숙의 설립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의 구미지역 방문 시 함께 파견되었던 여성 유학생 5인 중 한명이었던 쓰다 우메코(津田雨子)에 의해 1900년 설립된 여자영학숙(女子英学塾)이 쓰다주쿠 대학의 전신이다.[1]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국가 주도의 보통교육을 실시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을 독려하였으나, 이는 국가 중심 사회 발전 모델을 수립하는 일환으로 실시된 것일 뿐 전문직 여성의 양성 등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일본인 미국 유학생이자 일본의 1세대 여성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쓰다 우메코는 이러한 일본의 여성교육의 실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여성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엘리트교육을 지향한 여자영학숙의 설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쓰다 우메코가 중요시 여긴 영어심화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1923년에는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교사가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1931년 현재의 고다이라 시[2]로 캠퍼스를 옮기게 된다. 이후 1933년에는 쓰다영학숙(津田英学塾)으로 개칭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국가 주도의 보통교육을 실시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을 독려하였으나, 이는 국가 중심 사회 발전 모델을 수립하는 일환으로 실시된 것일 뿐 전문직 여성의 양성 등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일본인 미국 유학생이자 일본의 1세대 여성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쓰다 우메코는 이러한 일본의 여성교육의 실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여성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엘리트교육을 지향한 여자영학숙의 설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쓰다 우메코가 중요시 여긴 영어심화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1923년에는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교사가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1931년 현재의 고다이라 시[2]로 캠퍼스를 옮기게 된다. 이후 1933년에는 쓰다영학숙(津田英学塾)으로 개칭한다.
2.2. 쓰다주쿠 대학의 설립
3. 교통
철도역으로는 세이부 철도 코쿠분지선의 타카노다이역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