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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e de Strasbourg-Ville 스트라스부르 빌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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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선 노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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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스트라스부르의 철도 역사는 세 개의 역이 순서대로 지역의 중심역 역할을 넘겨주는 것을 그 골자로 한다. 첫번째 역은 스트라스부르-바젤 철도회사가 1841년부터 이용하던 쾨닉스호펜역이다. 이 역은 1846년부터 같은 회사가 운영하던 마레 베르역(Marais-Vert; 초록 늪)에 파리-스트라스부르 철도회사[2]가 사르부르-스트라스부르 구간을 연결하면서 화물역으로 전환된다. 이후 마레 베르역은 1854년에 승객 역사를 갖추게 되고 1861년 켈교가 완공되면서 독일발 열차들의 종착역 구실을 맡게 된다.
1870년 보불전쟁 패배의 결과로 이듬해 마레 베르역이 독일의 제국 철도 알자스-로렌 노선에 편입됨에 따라 국경역[3]에서 파리까지 연결할 새로운 기차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듬해 독일 당국의 주도 하에 신역사 설립 프로젝트를 추진, 요한 야콥스탈이 하노버역을 참고하여 설계하여 1878년부터 공사를 개시, 1883년에 중앙역(Zentral-Bahnhof)으로 개업하여 마레 베르역의 역할을 계승한다.
이 역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승리함에 따라 1919년 정부 예하의 알자스-로렌 철도부의 철도망에 편입된다. 이 때 역사 외벽에 있던 독일 제국의 독수리 문장을 스트라스부르 시 문장으로 모두 바꾸고 역 내부의 독일어를 모두 프랑스어로 바꾸었다. 1938년 철도 국유화를 거쳐 SNCF에 편입되었으나 1940년 나치가 스트라스부르를 점령함에 따라 다시 제국 철도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며 이는 1944년 스트라스부르 해방까지 이어진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교통량은 점차 회복됨에 따라 더 많은 승객을 수용하기 위하여 1980년부터 6년간 역사 개보수를 실시한다. 이후 TER의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또 LGV 동유럽선 계획의 확정에 따라 역이 TGV의 유럽 허브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음에 따라 2006년 또 한번의 역사의 확장 공사를 개시한다. 구 역사를 통째로 덮고 있는 유리 파사드는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1870년 보불전쟁 패배의 결과로 이듬해 마레 베르역이 독일의 제국 철도 알자스-로렌 노선에 편입됨에 따라 국경역[3]에서 파리까지 연결할 새로운 기차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듬해 독일 당국의 주도 하에 신역사 설립 프로젝트를 추진, 요한 야콥스탈이 하노버역을 참고하여 설계하여 1878년부터 공사를 개시, 1883년에 중앙역(Zentral-Bahnhof)으로 개업하여 마레 베르역의 역할을 계승한다.
이 역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승리함에 따라 1919년 정부 예하의 알자스-로렌 철도부의 철도망에 편입된다. 이 때 역사 외벽에 있던 독일 제국의 독수리 문장을 스트라스부르 시 문장으로 모두 바꾸고 역 내부의 독일어를 모두 프랑스어로 바꾸었다. 1938년 철도 국유화를 거쳐 SNCF에 편입되었으나 1940년 나치가 스트라스부르를 점령함에 따라 다시 제국 철도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며 이는 1944년 스트라스부르 해방까지 이어진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교통량은 점차 회복됨에 따라 더 많은 승객을 수용하기 위하여 1980년부터 6년간 역사 개보수를 실시한다. 이후 TER의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또 LGV 동유럽선 계획의 확정에 따라 역이 TGV의 유럽 허브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음에 따라 2006년 또 한번의 역사의 확장 공사를 개시한다. 구 역사를 통째로 덮고 있는 유리 파사드는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