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경공 47년(기원전 469년), 송 경공이 죽자 송 경공이 총애하는 신하 대윤(大尹)이 그를 옹립했다. 반대자는 우사 황완(皇緩), 대사마 황비아(皇非我), 사도 황회(皇懷), 좌사 영불완(靈不緩), 사성 악패(樂茷), 대사구 악주서(樂朱鉏) 등 6명의 대신들이었다. 그리하여 그 힘을 못이긴 대윤과 송공 계는
초(楚)나라로 내쫓기고, 송공 계의 형제인 공손 특을 대신해서 세우니 그가 바로 송 후소공이다.
[3]전술한대로 사기에 송공 계가 기록되지 않았는데, 사기에서는 송 후소공이 송 경공의 태자를 죽이고 즉위했다고 하나 보다 당대에 가까운 춘추좌씨전 기록에서는 송 경공은 아들이 없어 그 빈틈을 송공 계가 노렸으며, 그러다가 대신들에게 쫓겨나 송 후소공이 즉위했다는 기록이 있어 전혀 딴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