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 |
현재 | |
이름 | |
국적 | |
출생 | |
신체 | 183cm, 80kg |
종목 | |
주종목 | 장대높이뛰기 |
별명 | 인간새 |
링크 | |
1. 소개[편집]
2. 선수 경력[편집]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지 4년 만인 1985년 세계 최초로 6m의 벽을 넘으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3년 실내경기에서 6m 15cm 를 넘으며 '실내' 세계신기록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21년이 지난 후에야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에 의해 경신되었다.
1994년 실외경기에서 6m 14cm를 넘으며 '실외'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는데, 이 기록은 26년 후 아르망 뒤플랑티스가 경신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참고로 두플란티스는 실내 기록 역시 6m 18cm를 넘으며 실내/실외 기록을 모두 보유하게 되었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직전 대회인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 등이 불참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불참하였고, 그 역시 참가하지 못했다.[2] 이후 자신의 첫 올림픽 출전으로 기록된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것이 그가 올림픽에서 차지한 유일한 금메달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올림픽에서 유난히도 운이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소련 해체로 인해 독립국가연합 소속으로 참가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예선은 가볍게 통과했지만, 결선에서 어이없이 실패하고 '기록 없음'으로 되어 결선 참가 선수 중 꼴지를 기록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는 자기의 고국인 우크라이나 국적으로 참가하려 했으나 발목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도 다시 도전하였으나 역시 결선에서 3연속 실패로 끝이 났다. 그나마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기에 망정이지, 자칫했다면 당대 최고의 장대높이뛰기 선수임에도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전혀 못딴 '비운의 제왕'으로 기록될 뻔했다.부상은 그렇다 쳐도 두번의 올림픽에서 실력으로 실패한게 비운으로 부를 일인가
한국어 위키피디아의 기록을 보면 1984년부터 1994년까지 10년 간 자신의 기록을 자기 자신이 갈아 치우며 독주를 하였고, 1994년에 기록한 6m14cm는 26년이나 유지되었다가 2020년 9월 18일,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아르망 뒤플랑티스가 6m 15cm를 넘어 깨졌다.
1994년 실외경기에서 6m 14cm를 넘으며 '실외'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는데, 이 기록은 26년 후 아르망 뒤플랑티스가 경신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참고로 두플란티스는 실내 기록 역시 6m 18cm를 넘으며 실내/실외 기록을 모두 보유하게 되었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직전 대회인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 등이 불참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불참하였고, 그 역시 참가하지 못했다.[2] 이후 자신의 첫 올림픽 출전으로 기록된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것이 그가 올림픽에서 차지한 유일한 금메달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올림픽에서 유난히도 운이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소련 해체로 인해 독립국가연합 소속으로 참가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예선은 가볍게 통과했지만, 결선에서 어이없이 실패하고 '기록 없음'으로 되어 결선 참가 선수 중 꼴지를 기록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는 자기의 고국인 우크라이나 국적으로 참가하려 했으나 발목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도 다시 도전하였으나 역시 결선에서 3연속 실패로 끝이 났다. 그나마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기에 망정이지, 자칫했다면 당대 최고의 장대높이뛰기 선수임에도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전혀 못딴 '비운의 제왕'으로 기록될 뻔했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의 기록을 보면 1984년부터 1994년까지 10년 간 자신의 기록을 자기 자신이 갈아 치우며 독주를 하였고, 1994년에 기록한 6m14cm는 26년이나 유지되었다가 2020년 9월 18일,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아르망 뒤플랑티스가 6m 15cm를 넘어 깨졌다.
3. 수상 기록[편집]
소련 대표로 참가한 대회 | ||
올림픽 | ||
금메달 | 장대높이뛰기 | |
세계선수권(실외) | ||
금메달 | 1983 헬싱키 | 장대높이뛰기 |
금메달 | 1987 로마 | 장대높이뛰기 |
금메달 | 1991 도쿄 | 장대높이뛰기 |
세계선수권(실내) | ||
금메달 | 1985 파리 | 장대높이뛰기 |
금메달 | 1987 인디애나폴리스 | 장대높이뛰기 |
금메달 | 1991 세비야 | 장대높이뛰기 |
유럽선수권(실외) | ||
금메달 | 1986 슈투트가르트 | 장대높이뛰기 |
유럽선수권(실내) | ||
금메달 | 1985 아테네 | 장대높이뛰기 |
친선경기 | ||
금메달 | 1986 모스크바 | 장대높이뛰기 |
우크라이나 대표로 참가한 대회 | ||
세계선수권(실외) | ||
금메달 | 1993 슈투트가르트 | 장대높이뛰기 |
금메달 | 1995 예테보리 | 장대높이뛰기 |
금메달 | 1997 아테네 | 장대높이뛰기 |
세계선수권(실내) | ||
금메달 | 1995 바르셀로나 | 장대높이뛰기 |
4. 기타[편집]
- 총 35회에 걸쳐서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는데, 훨씬 더 높은 기록을 세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존 기록에서 1~2cm만 높혀서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당시 소련의 포상금 정책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소련은 세계신기록을 얼마나 크게 경신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단지 기록을 경신하기만 하면 포상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씩 자주 기록을 경신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자신이 넘사벽의 1인자이니깐 가능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부브카의 전성기 때는 다른 선수들은 은메달을 따내기 위해서 경쟁했고, 부브카는 다른 선수들이 다 끝날때 쯤 등장해서 가볍게 금메달을 확보해 놓은 다음, 자기 기록을 넘느냐 못 넘느냐에 도전하는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 100m 최고기록이 10.05 초[3]이고, 멀리뛰기 기록은 7.80m 라고 한다.
- 2002년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1] 우크라이나어[2] 부브카는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때문에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참가 대상이 아니었다.[3] 참고로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칼 루이스가 경신한 세계기록이 9초 92였다. 만약 부브카가 단거리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100m 종목에서 메달권에 들었을 것이다.[4] 스네이크맨 스테이지에서 뚫어뻥을 가지고 높이뛰기를 하는 잡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