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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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역사
3.1. 20세기 이전3.2. 20세기 초반3.3. 현대의 성해방주의[* 2012년에 출간된 『Documenting Intimate Matters: Primary Sources for a History of Sexuality in America』(Thomas A. Foster 저) 127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번역.요약한 것이다.]
4. 관련 개념
4.1. 성과학4.2. [[자유연애주의]]4.3. [[성 긍정 페미니즘]]
4.3.1. 립스틱 페미니즘
5. 관점
5.1. 자유주의
6. 대표 인물7. 같이 보기


가족이 일부일처라는 권위주의 가정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성혁명을 구현하며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처방전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집' 안에서의 성해방입니다.[3]
- 테라야마 슈지, 「사자에상의 성생활」, 영화예술 1970년 11월호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나 성적 쾌락 추구의 자유가 보장될수록 민주적 사회 분위기와 개개인의 인권 역시 차츰 보장돼 간 것이 문화적 선진국들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 마광수, 「에로스를 옹호함」, 2011[6]||

1. 개요

Sexual Liberation

성에 관한 해방을 추구하는 해방주의 분파. 문화적 해방주의의 분파로 여겨진다.

성해방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주류 규범의 성적 억압이나 종교적 권위로부터 저항하여 인간의 성적 본능을 존중하며 성개방을 지향하는 사상이라고 한다. 문화적 해방주의(cultural liberation)의 한 갈래로 여겨진다. 주의해야 할 점은 맑시즘이나 라캉철학처럼 어떠한 특정한 단일 사상을 일컫는 용어가 아니라, 성해방에 관한 일련의 유사한 이념들을 한 데 묶기 위해 쓰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즉, 성(Sexuality)에 관한 입장차를 정리하기 위해 편의상 만들어진 개념이다.[7] 성해방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사상은 흔히 성적 보수주의(Sexual Conservatism)라고 일컬어지곤 한다. 성해방주의를 쾌락주의로 오해하고 반대 편에 금욕주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쾌락주의자로 볼 수 없는 성해방주의자들도 존재한다.[8]

2. 설명

대체로 검열권력을 부정하는 등 파쇼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경향이 강하며, 문화적 해방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우파 해방주의가 아니라 좌파 해방주의로 취급된다.[9][10]에 대한 억압을 위계 질서로 보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기존의 성적 고정관념과 관습을 탈피할 것을 주장한다. 보통 "성은 정치적이다"라는 구호를 케이트 밀레트를 위시한 급진 페미니스트의 전유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성 정치의 개념은 빌헬름 라이히가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 알프레드 킨제이, 오쇼 라즈니쉬[11], 다니엘 게랭[12], 휴 헤프너[13], 테라야마 슈지[14], 마광수[15] 등이 대표적인 성해방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니나 하틀리[16] 등 성 긍정 페미니즘(Sex-positive feminism)이 존재한다. 흔히 성 긍정 페미니즘을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래디컬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성 긍정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학자가 퀴어 이론에 공헌한 게일 루빈. 물론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중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성해방(피임과 낙태를 결정할 권리)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또한 성적 자기대상화가 오히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립스틱 페미니즘도 존재한다.

빌헬름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마르크스의 급진적인 사상을 접목해 성 해방과 성 정치를 주장했으며,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성을 혐오한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모두 비판했다. 라이히의 이론은 68세대 신좌파[17]에 계승되어 서구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되고 진보적인 사회가 되는데 크게 일조했다. 나아가 이러한 성해방 움직임은 퀴어이론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반면, 공산권이나 제3세계에는 성해방주의의 물결이 거의 미치지 않았다. 공산권이었던 세르비아의 영화감독 두산 마카베예프(Dušan Makavejev)는 라이히의 성해방론에 입각해서 『WR: 유기체의 신비』(1971), 『스위트 무비』(1974)와 같은 걸작 영화들을 쏟아냈다. 마카베예프는 공산주의 치하에서의 성적 억압을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가 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영화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에서는 성해방주의의 영향을 받아 70~80년대 포르노 해방 움직임에 동참했으나, 성에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내는데는 실패하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개방적인 컨텐츠가 공존하는 기형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한편, 한국의 박정희 군부 정권은 성해방주의의 흐름을 '서구의 퇴폐 사상'으로 취급하면서 통제하려고 했다. 80년대 3S 정책으로 일부 개방되긴 했지만 이것이 성해방으로 나가지는 못하였고 제한적으로 그쳤을 뿐이다.

성해방의 흐름은 68세대의 분열과 68혁명의 퇴조, 히피운동의 몰락 안티 포르노 운동의 대두, 80년대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등장 등으로 단절됐다. 안티 포르노 운동가들은 성해방주의를 '남성만의 성해방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성해방주의가 결과적으로 남성들의 시선에만 움직이는 여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해방주의 측에서는 성인 컨텐츠의 시선이 남성 편향적인 것은 "남성중심사회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아니라 남성중심사회로 인해 영향받은 결과물"이라는 근거로 반박한다. 즉, 성인물이 남성 편향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해결방법에 있어서 성문화 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성문화를 확산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 잠시 성 해방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크게 주목받은 인물이 마광수였으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마광수는 주류 문학계와 교수 사회의 타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줄곧 내놓아 이미 원로 교수들 사이에서 찍혀 있는 인물이었으며, 교수 출신이었던 현승종 당시 국무총리가 직접 지시하고 수사를 지휘하여 마광수가 강연 도중 현장에서 체포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후로 마광수는 교수 사회에서 대놓고 따돌림을 받는 처지에 놓였으며, 현재까지 그저 변태나 마초이스트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18] 결국 이러한 사회적 차별과 혐오 시선은 고인의 운명을 달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광수 항목 참조.

현재 한국에서 성해방주의의 움직임은 상당히 미약한 상태. 표창원이 포르노 합법화 얘기를 꺼냈다가 보수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곤욕을 치룬 걸 보면, 성해방주의가 공론화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겠다.

3. 역사


3.1. 20세기 이전

성해방주의자들은 성적 보수주의가 유행하게 된 계기를 성욕음 금기시하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가 대중화되면서 일어난 일이고 고대엔 오히려 성적으로 개방적이었다고 주장한다.[19]

대표적으로 고대 인도는 카마수트라를 저술하고 성적인 유적을 남겼을 정도로 성해방주의가 있었으며[20], 미노아 문명도 여성들이 유방을 노출하고 성적인 축제를 열었을 정도이다.[21]

그리고 11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유럽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데콜타주가 있지만 당시 유방은 관능적인 의미로보단 여성스러움을 보여주는 의미로 작용하기 때문에 성적 개방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22]

3.2. 20세기 초반

성해방주의자들은 20세기 이전까지 세계의 주류였던 성적 억압에 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 것은 러시아 혁명이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에 따라 서구에서 유래가 없었던 일명 “성담론”이 오고 갔다. 그러나 성해방주의자들에 따르면 이오시프 스탈린은 집권 이후로 이런 시도를 모두 무산시켰고 과거의 성적 보수주의를 부활시켰다고 한다.

한편 독일에서는 빌헬름 라이히가 나치즘스탈린주의, 보수주의에 반대하여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이론을 결합하여 성해방주의 이론을 설파했다. 비록 탄압당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 이후 68혁명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68혁명에 영향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알프레드 킨제이가 있다. 물론 두 사람은 성적 자유주의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욕은 사회악이라는 당시 기독교적 규범에 반한 이론을 전개했으며 킨제이는 킨제이 보고서를 통해 여성에게도 성욕이 존재하고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들 정신분석학자들의 주장은 반증 가능한 주장이 아니므로 칼 포퍼에게 반박된다.

3.3. 현대의 성해방주의[23]

현대적 의미에서의 성해방주의(Sexual Liberalism)는 1920년대에 이미 그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급속한 도시화, 대중 언론의 확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흑인 시민권 운동,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24], 반전 운동, 사회적 정의 운동, 게이 인권 운동과 같은 과 같은 사회 운동이 성해방 사회(sexual liberal society)가 도래하는 요인이 되었다. 미 연방 대법원은 One v. Package(1935), Griswold v. Connecticut(1965), Loving v. Virginia(1967), Roe v. Wade(1973) 등의 판례를 통해 성해방주의를 저해하던 법적 메커니즘을 약화시켰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없진 않았다. 도덕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해 국가주의적 수사여구(nationalized rhetoric)를 정당화시켰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미국의 주류 문화에서는 대체로 "결혼이나 출산과는 관계 없는 성적 표현"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

성해방주의의 영향력을 우려하는 사회적.정치적 백래쉬(backlash)가 두드러진 것은 20세기 후반에 와서였다. 1980년대 무렵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이 정권을 쥐었고, 성해방주의는 정치.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아 위축되게 되었다. 20세기 말, 기독교 근본주의가 성 해방, LGBT 인권, 2세대 페미니즘에 대항하여 벌인 새로운 보수주의적 움직임을 성해방주의자들은 '문화 전쟁(culture wars)'이라고 부른다.#문화전쟁에 관한 참조 링크

  • 1970년대
68혁명은 마르크스주의 세력에 의해 보수주의, 나치즘, 현실사회주의에 반발하여 일어난 사건이었다. 당시 성자유주의자들은 피임, 낙태, 야동, 성매매, 혼전성교, 비삽입성교, 더 나아가 동성결혼의 합법화 및 동성부부에 대한 국가의 사법적 보호, 난교 등 기존에 이상성욕이라 여겨지던 성적 행위들을 옹호했으며 이에 따라 질병이나 죄악으로 여겨졌던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페미니스트들도 성해방 곧 여성 해방이라고 주장했으며 피임, 낙태의 자유화를 주장했고 심지어 인공 자궁을 옹호했다. 그리고 남성 위주의 야동에 반대하여 여성용 야동도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플레이보이허슬러라는 도색 기업도 성해방주의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이들은 당시 기독교 우파, 또는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반대하는 일부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과 싸우곤 했다.

  • 1980년대 이후
로널드 레이건마가렛 대처 등의 보수성향 정권이 집권하면서 성해방주의가 약화되었다. 포르노, 성매매 등의 탄압했다.

그리고 반 포르노 성향인 페미니스트[25]는 포르노을 탄압하는 프로파간다를 퍼트렸으며 그 이후 페미니스트들도 성해방주의를 남성우월주의, 여성비하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 공고하게 되었다.

이들의 프로파간다 이후로 성문화는 음지로 숨어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빌헬름 라이히의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그 휴유증이 지금도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다.[26]

4. 관련 개념

4.1. 성과학

Sexology.[27][28]

성해방주의와 성과학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온 공생관계에 가깝다. 성적 억압의 상당수가 전통적인 관습이나 종교적 권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습 등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성을 정신분석학-맑시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성해방주의로 이어지곤 했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성적 욕망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물론 프로이트는 도덕적 금욕주의에 따라 본능의 포기를 교육할 것을 주장했지만, 성적 욕망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능으로 봤다는 점에서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프로이트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성과학자들 중에서는 훗날 성해방주의자로 평가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학자가 앞서 서술한 빌헬름 라이히[29]이며, 알프레드 킨제이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양자는 별개의 개념이다. 성과학은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성기능이나 성 역학, 성 의학 등을 연구하는 것이고, 성해방주의는 성에 관하여 해방주의적 입장을 보이는 일련의 사회사상들을 포괄하여 특칭한 개념이다.

4.2. 자유연애주의

Free love

자유연애는 주류사회의 관습에 구속되지 않은 사랑을 의미한다.

성해방주의와 혼동될 수 있지만 자유연애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고 성해방주의는 육체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영문 위키백과 Free love 문서에서는 서로 혼용해서 서술되어 있지만 1960년대 이전에 자유연애주의자들은 피임,낙태,야동,성매매,비삽입성교,난교가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에 따른 혼인을 추구했다.[30]

4.3. 성 긍정 페미니즘

Sex-positive feminism.

성해방이 여성 인권(여성의 자유)의 한 요소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 시작은 앨런 윌리스(Ellen Willis)가 1981년 출간한 에세이 『성욕의 지평: 여성 운동은 친-섹스인가?(Lust Horizons: Is the Women's Movement Pro-Sex)』로서, 이 책에서 윌리스는 청교도의 금욕주의적 성 관념, 도덕적 권위주의, 안티 포르노 운동 등을 비판했다. 이러한 성 긍정 페미니즘도 성해방주의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4.3.1. 립스틱 페미니즘

많은 성-긍정 페미니스트들은 다른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처럼 코르셋이라고 일컫는 여성성을 가부장적인 산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립스틱 페미니스트들은 코르셋은 항상 가부장적인 강요는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적인 힘으로 작용했던 면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립스틱 페미니즘도 성해방주의를 지지하지만 대부분의 성-긍정 페미니즘과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여성성을 인정하는가 아닌가이다. 다만 립스틱 페미니즘도 성-긍정 페미니즘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5. 관점

5.1. 자유주의



마광수는 모두가 귀족이 되는 상향평준화와 원시와 문명이 결합되는 세상을 주장했다.[31] 그는 진화심리학을 수용[32]하여 인간의 본성을 긍정하고 본성대로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라고 주장했다.[33] 육체적 사랑이 진정하며 정신적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형이상학에 머물고 그 것 자체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파처럼 성적 절제와 이성애를 강조하거나 좌파처럼 열등한 외모와 타인종도 사랑하고 강조하는 것보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모든 인류를 인간의 본성에 맞는 육체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쇼 라즈니쉬는 주류 종교가 억압해온[34] 여성성을 옹호하면서 여성성이 가부정적인 산물이라는 이유로 이를 버리려는 당시 래디컬 페미니즘을 비판했다. 라즈니쉬는 피임, 낙태를 옹호했으며 여성성을 가진 여성을 주도로 하는 성해방주의를 주장했다.

자유의지주의 같은 경우 개인자유의 관점에서 성해방주의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6. 대표 인물

7. 같이 보기


[1] 원문: 家族が一夫一婦という権威主義家庭の抑圧から自由になってセックス・レボルーションを体現してゆくためには、二つの処方箋が考えられます。その一つは、「家」内部での性解放です。[2] 원문: 家族が一夫一婦という権威主義家庭の抑圧から自由になってセックス・レボルーションを体現してゆくためには、二つの処方箋が考えられます。その一つは、「家」内部での性解放です。[3] 원문: 家族が一夫一婦という権威主義家庭の抑圧から自由になってセックス・レボルーションを体現してゆくためには、二つの処方箋が考えられます。その一つは、「家」内部での性解放です。[4] 출처: http://formks.tistory.com/1558[5] 출처: http://formks.tistory.com/1558[6] 출처: http://formks.tistory.com/1558[7] 마르크스, 로버트 오언, 또는 페이비언의 사상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로 한 데 묶을 수 있다. 이처럼 성해방주의도 저마다 사상가나 운동가들마다 입장의 차이가 몹시 크지만, 성해방주의라는 개념에 포괄하여 묶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개념화된다.[8] 페미니즘도 이하에서처럼 성해방주의에 속하는 페미니즘과 성적 보수주의에 속하는 페미니즘으로 나누어볼 수 있지만, 기존의 성해방주의나 성적 보수주의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면모가 있다고 해석하는 성해방주의자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성해방주의자들의 교재에서는 해방주의나 보수주의로 묶을 수 없는 제3자의 입장으로 묶곤 한다.[9] 반면에 성해방을 지향하는 우파 사상은 Sexual Libertarianism이라고 한다. 번역을 하자면, '성적 자유지상주의'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성적 자유지상주의'라는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고 이 역시 '성해방주의'로 번역되고 있다. 대부분의 문서에서 이러한 개념 정의를 명확하게 밝히고 들어가는 경우가 드문 것으로 보인다. 대만에서 출간된 『매음적 윤리학 탐구(賣淫的倫理學探究)』(2009, 甯應斌 저)에서만이 '성적 자유주의자(性的自由主義派)' 개념에 자유주의자(自由主義派) 뿐만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자(自由至上派, libertarian)를 포함하고 있다고 정확히 개념을 한정하고 있을 뿐이다.[10] 여기서 성(性)이란 생물학적 성별(Sex)이나 젠더(Gende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섹슈얼리티(Sexuality)를 말한다.[11] 60년대 미국 히피에게 프리 섹스, 프리 러브의 개념을 전파한 인물. 성적 자유주의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자유로운 사랑을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로 파악했다.[12] Daniel Guerin(1904~1988). 프랑스의 아나키스트로서 아나키즘에 근간하여 성해방론을 주장했으며, 이후 퀴어 이론과 게이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게랭의 역저 『라이히와 킨제이 이후의 성혁명에 관한 에세이(Essai sur la révolution sexuelle après Reich et Kinsey)』(1963)는 국내에 '성자유'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13] 플레이보이 지 창립자[14] 성(性) 해방에 관한 에세이를 상당수 저술했다. 그는 전통 가정 내에서의 권위주의적 억압이 성에 대한 금기를 만들어냈다면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서는 "질투만 없어진다면 성에 관한 온갖 터부는 일시에 무너져버릴 것이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사자에상의 성생활(サザエさんの性生活)』(1970)에서는 만화 사자에상에서의 거세된 에로티시즘을 비판적으로 논평하였다. 사자에상에서 부부 간의 성생활이 등장하지 않거나 감춰지고 있는 배경에는 가부장제 성윤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15] 1995년 연세대 국문과 학부.대학원생 50여명이 출간한 『마광수는 옳다』에서는 마광수 교수를 권위주의의 위선을 비판하고 진보주의와 성해방주의를 접목한 인물로 평가했다.#관련 기사[16] 포르노 배우 겸 감독이다.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전직 간호사였다는것. 페미니즘에 기반하여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제작하고 있다.[17] 특히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라이히의 이론을 상당수 그대로 수용했다. 마르쿠제는 『Eros and Civilization』(1955)에서 성적 억압을 제거하는 문제를 재검토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이 급진주의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오늘날 마르쿠제는 '신좌파의 아버지(Father of the New Left)'라고도 불린다.[18] 근래 몇몇 발언에서 남성 우월주의자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만,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광수 교수는 상당히 성별에 대해 차별 없이 사람을 대했다고 한다. 일례에 따르면, 남성.여성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담배를 허락했던 마 교수의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고...[19] 근세까지만 해도 아브라함 계통 종교힌두교, 조로아스터교, 유교의 영향을 받은 지역만이 성욕을 금기시했고 영향을 받지 않았던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는 여전히 개방적인 성문화가 있었다.[20] Sexual Liberalism in India [21] Life in Minoan Crete [22] 데콜타주가 가장 유행했던 것은 프랑스였고 나머지 동유럽이나 남유럽은 여성의 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되었고 영국, 미국도 19세기 경에 개신교의 영향으로 성적 억압이 강화되어 데콜라주가 쇠퇴했다.[23] 2012년에 출간된 『Documenting Intimate Matters: Primary Sources for a History of Sexuality in America』(Thomas A. Foster 저) 127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번역.요약한 것이다.[24] 성긍정 래디컬 페미니즘과 성해방주의는 피임과 낙태의 권리를 확장시키려고 함께 노력했다는 점에서 상호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다. 또한 전통 가부장제가 강요하던 임신.출산의 의무를 형해화시키길 도모했다.[25] 예:안드리아 드워킨, 캐서린 맥캐넌, 쉴라 제프리스, 저메인 기어[26] 빌헬름 라이히는 1930년대에 유행했던 파시즘을 분석하면서 성적 억압이 파시즘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는 2010년대에 맞아가고 있는데 그 예가 바로 대안 우파SJW의 성행이다. 그리고 이것이 기독교 우파의 결집력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푸어 화이트의 반감과 겹쳐져서 일어난 게 바로 2016년의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였다.[27] 성과(成果)학이 아니라, 성(性)과학이다.[28] 헤이브록 엘리스(Havelock Ellis, 1859~1939)가 이 분야의 시초로 평가받는다.[29] 다만 라이히의 오르가즘 이론은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유사 과학으로 치부된다.[30] 동성애와 동성성교가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과 같다.[31] ‘관습적 윤리’에서 ‘개인적 쾌락주의’로 가야 한다 [32] 좌파는 진화심리학이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 하며 부정적이고 우파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관념에 끼워맞춰 진화심리학의 자료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특히 우파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관념이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33] 마광수는 데즈먼드 모리스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데즈먼드 모리스는 여성의 육체 자체가 성적 대상이 되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했다.미스 코리아> 경연 대회에 대하여 [34] 오쇼가 활동했던 인도에서는 자이나교가 금욕을 추구했고 힌두교, 이슬람교는 여성과 여성성을 비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