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서장주(徐璋珠)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서장주는 1921년 7월 22일 경상남도 양산시 양산읍 남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경고등공업학교에 재학하다가 중퇴했고, 1942년 1월에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 위해 동지 4명을 규합하고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들은 강제 징용되어 온 재일 노무자들을 대상으로 동지 포섭에 힘을 기울였고, 일제 군수시설을 파괴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노무자로 가장하고 요코하마 항구 일대의 노무자 합숙소 등지에서 투숙하면서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일제 밀정에 의해 발각되었고, 그는 1943년 12월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1944년 12월 9일에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요코하마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으로 출옥했다. 그 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양산군 지역구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의원으로서 활동했고, 6.25 전쟁 때 청년방위대 양산군 편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9년 2월 2일 서울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서장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일제 밀정에 의해 발각되었고, 그는 1943년 12월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1944년 12월 9일에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요코하마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으로 출옥했다. 그 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양산군 지역구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의원으로서 활동했고, 6.25 전쟁 때 청년방위대 양산군 편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9년 2월 2일 서울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서장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