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좌측 주황색이 섞인 건물이 서울동부구치소로 우측 옆은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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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동부구치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정의로 37 (문정동) 법조타운에 위치한 서울 도심 속 고층 구치소다.[1] 1977년 개소한 성동구치소가 그 전신으로, 2017년 6월 26일에 이전한 최신식 아파트형 구치소다.[2]
지하 2층, 지상 10층 1개동과 지상 12층 4개동 규모의 최신식 시설로 808실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3] 높은 벽이나 철조망, 감시탑 등이 없으며, 층간 이동은 엘리베이터로만 가능하며 교도관의 지문을 통해서만 운행되며 840여 개의 CCTV가 달려있다고 한다.
도심 내 교도소를 이전했는데 오히려 접근성이 더 좋아진 독특한 케이스[4]로, 주택가 사이에 있던 구 성동구치소 부지에 비해 문정업무지구와 상업지구 가든파이브 한복판에 위치하게 되어 찾아가기가 더욱 편해졌다. 시 외곽에 있던 미개발지에 어쩌다 보니 상업지구와 법원/검찰청, 업무지구가 들어서며 운좋게 구치소까지 같이 딸려들어가게 된 상당히 일이 잘 풀린 케이스로, 교도소가 일반적으로 님비시설로서 기피됨을 고려하면 사실상 유일무이한 케이스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5]
애초에 지을 때부터 주변과 위화감이 없도록 하고자 외관상으로는 벤처 회사 같아 보이게 만들어, 간판이 없으면 그냥 오피스텔이나 빌딩으로 착각할 법한 모습이 특징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경찰청 제3기동단[6], 서울동부준법지원센터와 함께 문정동 법조타운을 이루는 덕분에 인근 아파트의 가격은 상승했다고 한다. 바로 붙어있는 법원과 검찰청이 구치소의 치안문제를 불식시켜 주기 때문.누가 간 크게 검찰청과 구치소 옆에서 범죄를 저지를까 산지직송법원, 검찰청과 가까워진 덕분에 300m 길이의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서울동부지방법원이나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사건에 한해 재판이나 조사를 받으러 갈 때도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다.[7]
지하 2층, 지상 10층 1개동과 지상 12층 4개동 규모의 최신식 시설로 808실 2,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3] 높은 벽이나 철조망, 감시탑 등이 없으며, 층간 이동은 엘리베이터로만 가능하며 교도관의 지문을 통해서만 운행되며 840여 개의 CCTV가 달려있다고 한다.
도심 내 교도소를 이전했는데 오히려 접근성이 더 좋아진 독특한 케이스[4]로, 주택가 사이에 있던 구 성동구치소 부지에 비해 문정업무지구와 상업지구 가든파이브 한복판에 위치하게 되어 찾아가기가 더욱 편해졌다. 시 외곽에 있던 미개발지에 어쩌다 보니 상업지구와 법원/검찰청, 업무지구가 들어서며 운좋게 구치소까지 같이 딸려들어가게 된 상당히 일이 잘 풀린 케이스로, 교도소가 일반적으로 님비시설로서 기피됨을 고려하면 사실상 유일무이한 케이스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5]
애초에 지을 때부터 주변과 위화감이 없도록 하고자 외관상으로는 벤처 회사 같아 보이게 만들어, 간판이 없으면 그냥 오피스텔이나 빌딩으로 착각할 법한 모습이 특징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경찰청 제3기동단[6], 서울동부준법지원센터와 함께 문정동 법조타운을 이루는 덕분에 인근 아파트의 가격은 상승했다고 한다. 바로 붙어있는 법원과 검찰청이 구치소의 치안문제를 불식시켜 주기 때문.
2. 역대 소장
- 서경덕 (1977~1978)
- 김용우 (1978~1980)
- 김만암 (1980~1981)
- 이정문 (1981~1983)
- 정갑섭 (1983~1985)
- 박민희 (1985~1986)
- 정해영 (1986~1987)
- 김재봉 (1987~1989)
- 강경초 (1989~1990)
- 김재석 (1990~1991)
- 김희탁 (1991~1993)
- 권창락 (1993~1995)
- 권태정 (1995~1996)
- 김명환 (1996~1998)
- 이윤화 (1998~2001)
- 박재홍 (2001/2002~2003)
- 박청효 (2001~2002)
- 주규태 (2003~2004)
- 조종윤 (2004~2005)
- 양인권 (2005)
- 조영호 (2005~2006)
- 강보원 (2006)
- 최상국 (2006~2007)
- 김양택 (2007)
- 김태훈 (2007~2008)
- 이정규 (2008)
- 송방식 (2009)
- 김기현 (2010)
- 유승만 (2010)
- 김선태 (2010~2011)
- 정명철 (2011~2012)
- 경의성 (2012~2013)
- 김학성 (2013~2014)
- 주경섭 (2014~2015)
- 박병용 (2015~2016)
- 오홍균 (2016~2017)
- 신용해 (2017~2018)
- 최제영 (2018~2019)
- 신경우 (2019)
- 김진구 (2019~2020)
- 정유철 (2020.2~2020.9)
- 박호서 (2020.9~)
3. 주요 수용자
- 2019년 3월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출소하였지만, 2020년 2월 19일 재수용되었다가 보석 취소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하면서 일단 다시 석방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을 확정하자 2020년 11월 2일, 동부구치소에 재수용하게 되었으며, 그가 기결수임에 따라 수형자 분류 작업을 거쳐 조만간 교도소로 이송될 것으로 보인다.
4. 사건사고
4.1.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5. 여담
- 구치소와 검찰청/법원의 위치가 획기적으로 가까워져서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교도관의 업무 부하를 많이 줄였다고 한다. 교도관의 주임무 중 하나가 검찰이나 법원으로 호송하는 것이기에 바로 옆에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업무 부하가 줄어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서울동부지검과 지법에 한해서다. 참고로 동부지법, 지검, 구치소 모두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 대략 57,000제곱미터에 달하던 성동구치소때에 비해 33,000제곱미터로 부지면적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 바람에 야외에 설치되었던 운동장 등이 실내로 옮겨졌다.
- 비교적 신축 건물이어서 시설도 좋은 편일 뿐더러, 서울에 소재해서 법무부 교정본부 직원들에게는 꿈의 직장이라고 한다. 문정역이 가까워 접견도 편리해서 이감 수요도 높을 전망.
- 경비교도대가 존재하던 시절 본 구치소 부대는 중대급이었다.
- 2019년 9월부터 SH공사가 옛 성동구치소 건물을 일반에 공개했다.
[1] 이러한 도심 내의 고층 구치소의 다른 예로는 수원시에 위치한 수원구치소와 인천지법 및 지검 뒤에 위치한 인천구치소가 있다.[2] 직제상으로는 20일부로 변경[3] 기존 성동구치소의 수용인원이 1,200명이였다.[4] 이마트가 걸어서 3분 영화관은 걸어서 5분[5] 원주교도소도 백화점과 터미널이 인접해 있는 등 입지가 좋지만(이쪽은 도심이 확장되며 교도소 옆까지 개발이 진행된 것으로 동부구치소와는 반대다) 2020년 이전 예정이다.[6] 기존 성동구치소 옆에는 제2기동단이 위치해 있었다가, 동대문구 장안동의 신축건물로 이전했다.[7] 형사 피고인, 형사 피의자의 모습이 노출되지 않아 인권이 보장되며, 수용자의 도주 우려도 거의 없어지고, 호송차량 운행 감소로 교통체증이 줄고 유류비 절감, 온실가스 감축의 수훈갑이다.[8] 참고로 서울구치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 현기환 전 정무수석비서관,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차은택 전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장, 이우현 의원, 신연희 강남구청장 등이 있으며 서울남부구치소에는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이 있다.[9] 참고로 서울구치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 현기환 전 정무수석비서관,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차은택 전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장, 이우현 의원, 신연희 강남구청장 등이 있으며 서울남부구치소에는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이 있다.[10] 다만 이때는 이미 강남구가 1975년에 성동구에서 분리된 후였다. 이후 1979년 강동구 분구를 거쳐 1988년 송파구 분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11] 다만 이때는 이미 강남구가 1975년에 성동구에서 분리된 후였다. 이후 1979년 강동구 분구를 거쳐 1988년 송파구 분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