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의 왕자 봉성군 鳳城君 | ||
봉성군(鳳城君)[1] | ||
의민(懿愍) | ||
전주(全州) | ||
완(岏) / 항(𡵻) | ||
자첨(子瞻) | ||
부왕 | ||
생모 | 희빈 홍씨(熙嬪 洪氏) | |
부인 | 동래 정씨(東萊 鄭氏) | |
자녀 | 1남 1녀[2] | |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 | |
생몰기간 | ||
1. 개요[편집]
조선의 왕족. 조선 11대 임금 중종의 서자로, 전주 이씨 봉성군파의 파시조이다.
중종의 후궁인 희빈 홍씨의 소생이다. 이름이 비슷한 중종의 서자이자 경빈 박씨의 아들인 복성군과는 이복형제이다.
12대 임금 인종 재위 때 관료였던 윤원형과 이기에게 아부를 부렸다는 이유로 경기관찰사 김명윤의 무고에 따라 계림군과 함께 반역 미수 혐의로 울진군으로 유배되었다. 귀양 중 발병으로 강원도 평창군으로 유배지가 바뀌어져서 그 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3대 임금 명종 재위 때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위리안치된 후 자처하라는 명을 받고 죽었다.[3]
중종의 후궁인 희빈 홍씨의 소생이다. 이름이 비슷한 중종의 서자이자 경빈 박씨의 아들인 복성군과는 이복형제이다.
12대 임금 인종 재위 때 관료였던 윤원형과 이기에게 아부를 부렸다는 이유로 경기관찰사 김명윤의 무고에 따라 계림군과 함께 반역 미수 혐의로 울진군으로 유배되었다. 귀양 중 발병으로 강원도 평창군으로 유배지가 바뀌어져서 그 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3대 임금 명종 재위 때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위리안치된 후 자처하라는 명을 받고 죽었다.[3]
2. 사후[편집]
3. 여담[편집]
- 본래 명종은 봉성군이 벽서사건을 직접 모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처형하라는 신하들의 요청을 거절하였는데, 계속되는 상소에 못이겨 결국 봉성군의 자처를 명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