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편집]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중 하나로 독립적인 세력으로 발전하면서 이탈리아에서는 물론이고 서유럽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무역 체계를 구축했다. 오랜 시기동안 동지중해 무역에서 상대할 국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지위를 누렸다.
2. 무역[편집]
2.1. 상품 선박과 항해 경로[편집]
베네치아가 건조한 화물 수송용 범선은 성능이 상당했다. 1300년경에 만든 선박이 이미 100톤이 넘는 상품을 선적할 수 있었고 1400년 무렵에는 150톤 이상으로 늘어났다. 베네치아 범선의 우위는 1500년대에도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시기 | 길이 | 너비 | 깊이 | 수송량 |
1300년 | 40.5m | 5.5m | 2.5m | 110t |
1400년 | 41.0m | 6.0m | 2.5m | 170t |
1550년 | 48.0m | 8.0m | 3.0m | 280t |
무역을 하기 위해 개척한 경로도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다른 지역에서 선박으로 수송한 상품을 키프로스로 운반하고 다시 그것을 본국을 거쳐서 플랑드르에 공급하는 항해 체계를 완성했다. 키프로스는 다른 지역에서 오는 상품이 거쳐가기 쉬운 위치에 있었지만 범선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베네치아에 의존했고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큰 상업 중심지 중 하나였던 플랑드르는 직접 상품을 가지고 지중해까지 오기에는 거리가 멀어서 역시 베네치아에 의존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베네치아의 무역 |
1318년 키프로스 항해 경로 개척 |
1320년 플랑드르 항해 경로 개척 |
1420년 플랑드르 신규 항해 경로 개척 |
1489년 키프로스 직접 점령 시작 |
1557년 베네치아 최대 영역 팽창 시기 |
1573년 키프로스 직접 점령 포기 |
2.2. 설탕 생산과 물량 독점[편집]
베네치아는 동지중해에 여러 무역 거점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은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설탕을 공급하고 있었던 키프로스였다. 키프로스는 1450년 무렵에 연간 800톤의 설탕을 생산했는데 베네치아는 무역을 독점해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이 정도의 설탕은 당시 베네치아가 건조한 범선 몇 척이면 모두 실어나를 수 있는 분량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력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나중에 아예 키프로스를 정복했지만 1500년 무렵에는 설탕 생산이 연간 400톤으로 떨어진 데다가 다른 국가들도 설탕 무역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 키프로스까지 빼앗기고 만다.
3. 인구[편집]
1557년을 기준으로 베네치아 제국의 지역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지역 | 지역별 인구 |
베네치아시 | 150,000명 |
석호섬 | 50,000명 |
이스트리아 | 50,000명 |
달마티아 | 100,000명 |
이오니아 | 50,000명 |
크레타 | 200,000명 |
본토 | 1,550,000명 |
베네치아 | 2,150,000명 |
키프로스 | 150,000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