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 마촐라의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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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 |
이름 | 발렌티노 마촐라 Valentino Mazzola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신체 |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
소속팀 | |
국가대표 | 12경기 4골(이탈리아 / 1942~1949) |
1. 개요[편집]
그가 팀의 절반이다. 남은 절반은 나머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마리오 리가몬티
2. 생애[편집]
2.1. 초기 선수 생활[편집]
마촐라는 운동으로 성공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운동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수영과 사이클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마촐라는 축구의 길을 선택했고 지역 팀 중 하나인 GS 트레솔디에서 뛰었다. 하지만 11살 때 마촐라의 아버지가 사망하였고 마촐라는 졸지에 소년가장이 되어 밀란의 알파 로메오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알파 로메오 팀에서도 뛰면서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선택하였다.
1939년 전쟁이 발발하여 마촐라는 베네치아로 가서 해군으로 복무하였다.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베네치아 팀의 선수로도 활약했는데 여기서 그는신발 따위는 필요 없ㅋ엉ㅋ 그의 신발이 없어 맨발로 플레이를 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전화위복. 더욱 유명해졌다.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그의 활약이 최고조로 달했던 대회가 바로 1940-41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였다. 베네치아를 이끌고 코파 이탈리아의 결승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의 상대는 AS 로마였다. 결승전에서 베네치아는 아마데이에게 전반 4분부터 5분만에 해트트릭을 얻어맞고 끌려가고 있었지만 마촐라의 37분 득점에 뒤이어 후반에는 결국 동점을 만들어 재경기로 이끌었다. 재경기에서 결국 베네치아는 1:0으로 승리. 팀의 현재까지 유일한 메이저 트로피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그의 활약을 보고 그에게 입단 제의를 한 곳이 바로 토리노의 두 구단. 유벤투스와 토리노 FC였다.
1939년 전쟁이 발발하여 마촐라는 베네치아로 가서 해군으로 복무하였다.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베네치아 팀의 선수로도 활약했는데 여기서 그는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그의 활약이 최고조로 달했던 대회가 바로 1940-41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였다. 베네치아를 이끌고 코파 이탈리아의 결승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의 상대는 AS 로마였다. 결승전에서 베네치아는 아마데이에게 전반 4분부터 5분만에 해트트릭을 얻어맞고 끌려가고 있었지만 마촐라의 37분 득점에 뒤이어 후반에는 결국 동점을 만들어 재경기로 이끌었다. 재경기에서 결국 베네치아는 1:0으로 승리. 팀의 현재까지 유일한 메이저 트로피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그의 활약을 보고 그에게 입단 제의를 한 곳이 바로 토리노의 두 구단. 유벤투스와 토리노 FC였다.
2.2. 토리노 FC[편집]
2.3. 수페르가의 비극[편집]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4. 어록[편집]
5. 뒷 이야기[편집]
- 마촐라는 10살 때 아다 강에 빠진 소년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 소년은 AC 밀란의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수비수 안드레아 보노미였다.
- 마촐라는 경기를 뛰다 유니폼의 소매를 걷어올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팀 동료들의 움직임이 작전에 맞지 않거나 팀의 플레이가 잘되지 않을 때 팀 동료들과 팬들에게 보내는 노여움의 표시였다.
- 밀라노지역에서 드리블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를 칭해서 '베네치아니'라 하는데 이 역시 베네치아에서 활약하던 마촐라에게서 온 별명이다.
- 산드로 마촐라는 1964년 당시 황혼으로 달려가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의 저승사자 군단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었다. 산드로 마촐라는 그 경기에서 2골을 넣었고, 인터 밀란이 3-1로 승리하여 우승을 하였다. 페렌츠 푸스카스는 그에게 다가와 유니폼 교환신청을 하며 "난 네 아버지와 경기를 했었지. 너도 그 못지 않구나."라고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