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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 대통령표창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중훈은 1891년 7월 7일 경상도 영산현 계성면(현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명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면에서 구중회·장진수·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는 맹세서에 서명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태극기와 선언문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부하면서, 7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해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언도받아 이에 공소하였으나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부분 취소되어 약간의 감형이 있었을 뿐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아#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받다가 1943년 4월 30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면에서 구중회·장진수·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는 맹세서에 서명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태극기와 선언문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부하면서, 7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해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언도받아 이에 공소하였으나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부분 취소되어 약간의 감형이 있었을 뿐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아#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받다가 1943년 4월 30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