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종근은 1892년 12월 12일 함경남도 리원군 동면 용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중국 길림성 북간도로 건너갔으며,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통신부원으로 활동했다. 1921년 12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한인 교육의 통일, 보통학교 증설, 고등보통학교 신설 및 그 내용의 충실 등에 진력하고자 '시베리아조선인교육연구회'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922년 1월 '시베리아 한인교육회'가 정식 창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이후 의무교육의 실시, 학제(學制)의 통일, 교과용도서의 편집, 교원의 양성, 사회교육의 진작 등 교육사업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러시아 연해주 교육회 대표자로 파견된 이후, 1923년 6월까지 국민대표회의에서 임시서기, 정식간부 선임을 위한 투표지 검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대표자격심사위원 5인 중에 뽑혔으며, 분과 및 위원회의 위원의 선거투표에서 교육분과위원으로 당선되어 교육문제에 대해 보고설명을 발표하였다.
개조파의 중도 퇴장으로 동회가 결렬되자, 창조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윤호(尹浩), 신숙, 원세훈, 김창환, 김우희(金宇希) 등 39인이 출석한 비밀회의에서 새로 제정하는 헌법을 통과하고, 이어 국민위원 33인, 국무위원 4인, 고문 31인을 선거하였고, 선포문, 헌법, 결의안 등을 인쇄하여 각 방면의 단체와 동지에게 배포 발표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종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22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러시아 연해주 교육회 대표자로 파견된 이후, 1923년 6월까지 국민대표회의에서 임시서기, 정식간부 선임을 위한 투표지 검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대표자격심사위원 5인 중에 뽑혔으며, 분과 및 위원회의 위원의 선거투표에서 교육분과위원으로 당선되어 교육문제에 대해 보고설명을 발표하였다.
개조파의 중도 퇴장으로 동회가 결렬되자, 창조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윤호(尹浩), 신숙, 원세훈, 김창환, 김우희(金宇希) 등 39인이 출석한 비밀회의에서 새로 제정하는 헌법을 통과하고, 이어 국민위원 33인, 국무위원 4인, 고문 31인을 선거하였고, 선포문, 헌법, 결의안 등을 인쇄하여 각 방면의 단체와 동지에게 배포 발표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종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