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
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대통령표창 |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제국은 1888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양부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고, 1919년 3월 29~30일 길림성 장백현 팔도구 제7정목학교(正蒙學校)에서 김관계(金冠戒) 등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1921년 태극단(太極團) 임강현(臨江縣) 본부에서 총무로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1919년 장백현·임강현을 중심으로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鄭森承)·김동준(金東俊)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태극단은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로 잠입시켜 지단(支團)을 설치하고, 일제 군경과 전투를 전개하였다. 또한 장백현을 근거로 활약하던 대한독립군비단·광복단·흥업단(興業團) 등과 연합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1921년 11월 노령 흑하(黑河)에서 조선독립단 연합총회가 개최되자, 박제국은 태극단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 연합총회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대한독립광정단으로 발전하였다. 이어 1925년 1월 다시 광정단을 비롯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길림주민회·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7개 단체가 통합하여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자, 정의부 부원으로 장백현·임강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박제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태극단은 1919년 장백현·임강현을 중심으로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鄭森承)·김동준(金東俊)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태극단은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로 잠입시켜 지단(支團)을 설치하고, 일제 군경과 전투를 전개하였다. 또한 장백현을 근거로 활약하던 대한독립군비단·광복단·흥업단(興業團) 등과 연합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1921년 11월 노령 흑하(黑河)에서 조선독립단 연합총회가 개최되자, 박제국은 태극단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 연합총회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대한독립광정단으로 발전하였다. 이어 1925년 1월 다시 광정단을 비롯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길림주민회·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7개 단체가 통합하여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자, 정의부 부원으로 장백현·임강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박제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