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용화는 1881년 12월 28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일 천도교 교주 손병희 등이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사실을 전해듣자 3월 6일 아침에 박성요(朴性堯)·황우경(黃宇京)·황금채(黃金彩) 등과 함께 7시경 부여군 임천읍의 면사무소 및 공립보통학교 등지에서 다수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7월형을 언도받았으나 다시 상고하여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는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부여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3년 9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박용화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이후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7월형을 언도받았으나 다시 상고하여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는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부여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3년 9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박용화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