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명왕의 장남인데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경명왕은 자신의 장남인 밀성대군에게 나이가 어려서 난세의 지도자로 적합하지 않다 판단하고, 많이 걱정이 돼서 아우인
경애왕에게 물려준 것이다. 그 뒤에는 밀성대군으로 봉군(封君)되고,
밀양시에 눌러 앉으면서 밀양 박씨의 시조가 된다. 남동생이 7명이나 있었는데
[1] 각각 둘째부터 막내까지 고령, 함양, 죽산, 무안, 춘천, 순천, 충주, 상주, 월성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또한 자기 아들인 박욱(朴郁) 고려태조 때 삼한벽공도대장(三韓壁控都大將軍)을 지냈다.
그의 묘는 밀성대군지단(密城大君之壇)이라고 불리는데, 밀성대군지단에 대해서는 이 링크를 참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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