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영(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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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대영(朴大永)
본관
생몰
충청도 대흥현
(현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2]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대영은 1882년 12월 20일 충청도 대흥현(현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5일 오후 3시경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해 20명의 시위대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행진하다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 헌병과 대치했다. 일본 헌병 소키 아키히데(曾木秋秀)가 그를 체포하려 하자, 그는 아키히데가 가지고 있던 커다란 곤봉을 빼앗아 그것으로 헌병의 몸에 깍지를 끼워 꼼짝 못하게 했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8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예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8년 3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박대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예산파 56세손 영(永) 항렬[2] 영해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