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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3월 19일에 어떤 사람이 "박근혜가 탄핵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꿈을 꿨다"고 네이버 지식인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4년 후 이 꿈은 현실이 되고, 해당 글은 성지화되었다.
-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서예를 했다고 하는데, 글씨의 굵기와 대칭의 일관성, 여백의 간격 등을 봤을 때는 아마도 제대로 배운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글 휘호가 많은 편이다.펜 글씨는 필체가 백강고시체와 상당히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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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를 적을 때 연월일의 '일'에 해당하는 점까지 찍는 맞춤법을 잘 지킨다.
- 박근혜는 사실 정치인이 되기 전엔 딱히 한 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다른 다수의 대통령들이 이전 행적을 기반으로 대통령이 된 것과 대조된다.[1] 실제로 박근혜의 일생을 요약해보자면, 청와대에서 장기간 살다가 부친상을 당하자 청와대를 나와서 사택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아는 오빠한테 거액의 용돈을 받아다가 그걸 까먹으며, 육영재단 등에서 전횡을 일삼던 최태민을 비호하며 최씨 일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다 도중에 친동생들과도 최씨 일가 덕분에 사이가 서먹서먹해져있던 것을, 90년대 보수정당에서 TK 얼굴마담으로 쓰고자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카웃해 정계에 진출한 뒤 부모 잃은 불쌍한 아가씨란 노년층의 일부 동정론과 함께 보수세가 강한 대구에만 출마하며 든든한 영남 텃밭을 가지고 정치 생활을 이어갔다. 당연하지만 이때도 법안 발의는 별로 안했다. 그러다가 이명박과 17대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맞붙었지만 결국 져서 은둔하다가, 이후 인기가 떨어진 MB정권의 뒤통수를 치며 대통령이 되었다가 최순실에게 놀아난 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났다. 요약하자면 자기가 스스로 뭘 한 게 없다.
- 땡땡주의자다. 유머나 드립이 아니며, 실제로 벨기에 만화 땡땡의 모험을 엄청 좋아했다. 이 때문인지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시절, 육영재단에서 발간했던 만화 잡지 보물섬에서 땡땡의 모험이 연재되기도 했다. MBC에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도 했다. 심지어 국회의원 시절에 브뤼셀에서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 참배 행사 일정 이후 계획에도 없던 만화 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여기서 수행원들에게 열심히 땡땡을 설명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취임 첫 해인 2013년에 프랑스, 벨기에, 영국 방문 당시 벨기에 국왕 앞에서 이 만화를 언급하며 팬임을 인증한 바 있다. 박근혜가 최소한의 대통령직이라도 정상적으로 수행했더라면, 적어도 지지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우리들의 '덕후 대통령'으로 사랑받았을지 모른다.
- 패션에 무척 신경 쓴다고 한다. 대통령 취임 1년 동안 공식 석상에서만 122벌의 다른 옷을 착용했다. 사실상 3일에 1번꼴로 새로운 옷을 입은 셈. 관련 기사 그러나 정작 정장을 착용할 경우 절대로 스커트 형태의 치마를 입지 않았으며, 치마를 입을 경우 무조건 긴 치마만 입었고, 하이힐이나 팬티스타킹 등 서구적인 여성복 하의는 일절 착용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모든 의상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것은, 지금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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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대 대통령 선거 사후에 진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에게 투표한 이유로는 ‘신뢰가 가서/약속을 잘 지킬 것 같아서’가 22%로 가장 많고 ‘공약/정책이 좋아서’ 14%,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어서’ 14% 순으로 응답되었다. 그러나 여성대통령을 강조하고 그것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으나 정작 여성 정책에는 무관심한 등 여성대통령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 종편 및 일베저장소 유저들이 영화 겨울왕국의 주인공인 엘사와 박근혜가 닮았다는 주장을 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들은 엘사의 부모가 사고로 죽은 것과 박근혜의 부모가 사살 당해 죽은 것을 동일시하였고, 마침내 여왕으로 복귀하여 금의환향한 엘사의 모습과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청와대에 입성한 박근혜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당시 새누리당 대구시장 예비후보였던 주성영은 겨울왕국을 아예 '박근혜 영화'라고 명명하기까지 하였다. # 친박 세력이 이렇게 억지로 박근혜를 애니메이션 주인공에 끼워 맞춘 이유는 당시 폭발적 흥행으로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변호인의 실제 인물인 노무현이 주목 받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대항마로 황급히 겨울왕국을 내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가 국정농단을 벌이다 탄핵당하고 감옥에 수감되면서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 박근혜가 국회의원 시절, 친박 의원들과의 술자리에서 장제원 의원에게 "술을 대신 마셔 달라"고 부탁하면서 잔에 입을 살짝 댄 뒤 건넸다. 장제원은 술을 대신 마셔주고 잔을 다시 박근혜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주변의 친박 의원들이 "야! 그 잔을 놓고 가면(돌려주면) 어떡해? 가보로 가져가야지!"라며 장제원을 질타하였다고 한다.
그럼 님들이 가저가시든지장제원은 "박근혜가 입을 댔다는 이유 만으로 평범한 술잔을 성배로 취급하는 친박 의원들의 행태에 경악하였다"고 얘기한다.#
- 박근혜는 대통령 재직 당시 자질 문제로 인해 뒷말이 매우 많았고, 특히 딴지일보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뒷담화를 많이 한 대통령이 박근혜이다. 게다가 이 시기만큼 딴지일보가 박정희를 심하게 욕한 적이 없었다. 딴지일보에서는 박근혜 정권 기간 내내 박근혜를 깠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제대로 대박이 났다.
- 박근혜의 전담 기자들은 술자리에서 박근혜에 대한 취중진담을 늘어놓곤 했는데, '박근혜는 머리가 텅 비어 가지고 고집만 세다', '여러 번 설명해 줘도 못 알아듣는데, 성질 같아선 한 대 패주고 싶었다'는 등의 극언을 내뱉곤 했다고 한다.[3]
- 전여옥 前 한나라당 의원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박근혜는 당 대표 시절 최순실을 대동하여 대구방송 임원들과 식사 자리를 함께 한 일이 있었는데, 최순실은 먹던 젓가락으로 특정 반찬을 가리키며 '저 반찬 좀 이리 줘 봐요'라고 임원에게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 반찬을 박근혜 앞에 갖다 놓자 박근혜는 만족해 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는데, 그때 박근혜의 표정은 엄마가 자기 앞에 좋아하는 반찬을 놓아줬을 때 아이가 짓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또한 박근혜는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최순실의 반응을 살폈고, 최순실이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흐뭇해 했다고 한다.
- "신문 사설이나 칼럼의 내용을 읽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여옥은 증언한다. 심지어 자신을 칭찬하는 칼럼마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전여옥에게 '이 칼럼이 날 칭찬한 거냐'고 물어본 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res.heraldm.com/20121118000258_0.jpg - 위 사진은 박근혜의 대선 후보 시절 홍보물인데, 자기가 직접 물을 떠다 먹는 걸 자랑이랍시고 홍보하다가 네티즌들에게서 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우쭈쭈쭈 우리 근혜 이젠 혼자 물 떠먹을 줄 도 알아요?박근혜도 박근혜지만, 고작 직접 물 떠먹는 게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홍보팀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게다가 박근혜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가 당 대표를 맡던 시절 비서실장들이 박근혜의 옆에 찰싹 붙어서 물 심부름을 도맡아서 해서 기자들의 놀림감이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어, 물을 직접 떠다 먹는다는 위 홍보물조차 연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2011년 12월 1일 방송된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서 배우 현빈을 이상형으로 꼽았다.방송 영상 현빈에게 대통령 표창장을 수여하거나, 현충일 추념사의 낭독까지 맡기기도 하였다. 채널A의 풍문으로 들었쇼에 의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박근혜와 이름이 같이 거론되는 걸 부담스러워한 현빈 측에서 서둘러 강소라와의 열애설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또한 게이트 이후 박근혜가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의 상대 역인 하지원이 맡았던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피부과에 출입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묘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좋아하긴 정말로 좋아했던 듯하다.
파일:external/www.sisaweek.com/82320_61928_4339.png - 탤런트 송중기의 열렬한 팬이다. 송중기가 주연으로 출연한 태양의 후예의 애청자인 박근혜는 송중기를 청년 애국자로 추켜 세우며 'K-스타일 허브' 한식문화관 개관식에 초대하여 송중기와 함께 약과를 빚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그 뒤 박근혜는 안종범 수석에게 지시하여 소위 '송중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라고 지시하는데, 송중기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만들고 건물 안에 송중기의 입간판을 세우게 하고, 관광공사TV에 송중기 광고를 내보내게 하고, 송중기가 주연한 드라마인 태양의 후예의 홍보 자료를 보완하라고 하는 등, 관련 세부적인 사항을 직접 지시하였다. 이후 관련 예산도 26억 원에서 171억 원으로 급증하는데, 이로 인해 박근혜는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팬질을 하고,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였다는 비난을 받는다.# 정치 평론가 최진봉 교수는 "대통령이 팬심으로 특정 연예인을 콕 집어 세부적인 특혜를 직접 지시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면서 "개인의 사심을 채우느라 국정에 악영향을 끼친, 안 좋은 사례"라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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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에서 추석이나 설 명절 선물 발송하는 일은 정무수석실 행정관 차원에서 주로 이뤄지는 업무인데, 박근혜는 발송자 명단을 직접 첨삭해 자기 맘에 안 드는 인사들을 아무 이유 없이 빼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무수석실은 청와대에서 선물 발송이 제외된 인사들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내느라 몹시 혼났다고 한다.
- 국무총리 지명자 발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뜬금없이 "총리지명자를 내 최측근으로 바꿔야겠다"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 그 당시 이미 총리 내정 절차를 다 끝내고 공식 발표를 불과 몇 시간 남겨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친박 핵심 인사가 아니고선 총리로 쓰지 못하겠다며 고집을 부린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강력히 항의하여 총리 지명 변경을 막아내긴 했지만, 이런 박근혜의 이해할 수 없는 변덕에 관계자들은 창피함을 느꼈다고 한다.
- '박근혜 청와대'에서 일한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시절을 회고하며 "어휴, 쪽 팔려"를 연발하였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내려온 지시들은 도무지 대통령답지 못한 것들 일색이었다"고 회고하였다. 또한 이미 탄핵 사태가 불거지기 이전부터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이게 대통령이냐"는 자조와 부끄러움이 팽배했다고 한다.#
-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던 박관천 前 경정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는 아버지 덕분에 기업들이 다 먹고 살게 되었다는 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 취임 후, 기업들로부터 거리낌없이 돈을 갈취하고도 뭐가 문제인지 인식을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 대통령 재임 중 이용했던 관용차 중에는 특수 제작한 2세대 현대 에쿠스 방탄 리무진이 있다. 시판되는 에쿠스 리무진과는 길이 등에서 큰 차이가 난다. 취임식에서 국산차를 의전용 차량으로 사용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국정의 성패를 떠나 이 점은 칭찬받을 점이다. 정부기관은 국내 내수진작과 산업의 진흥을 위해 국산품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의무 중 하나라[4] 조달청에서도 외제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가능한한 반드시 국산품만을 조달하도록 하는데, 정작 행정부의 수장이 그간 국산차를 타지 않았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한국은 70년대부터 국산 자동차를 만들 기술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현대 에쿠스 리무진을 타고 있는 박근혜
- 형제자매는 박재옥, 박근령, 박지만 이렇게 셋이다. 언니 박재옥은 전처 김호남 소생인지라 이복동생들과는 나이 차이가 굉장히 벌어지는데,[5]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고 그걸 운영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 외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다. 문제는 동복 형제인 동생들. 여동생 박근령은 최근 친일 관련 실언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고, 남동생 박지만은 마약 사범으로 구속된 전력이 꽤 유명하다. 동생들은 박근혜가 최태민 일가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무지 싫어했기 때문에, 큰 가족 행사 이외엔 남매들과 관계를 거의 끊고 살았다고 한다. 또한 이들 3남매는 모조리 한국 현대사의 가장 미스터리하고 섬뜩한 사건 중 하나인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 주연급 등장인물로 얽혀 있다.
다만 은지원은 박근혜와 인척관계임이 널리 알려지기 이전부터 유명연예인 대열에 속했다
- 어떤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 중 지금의 정치 상황과 관련이 있는 말에 자신의 촌평을 붙여 놓았다.기사.
- 5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중국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매우 초보적인 수준으로, 기본적인 4성조차 흉내 내지 못하고 있다. 영상 2분 45초부터 "젊은 시절부터 5개 국어를 익혀서 국제적 감각을 길렀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중국 칭화대학에 방문해 한 중국어 연설을 보면, 기본적인 문장 암기는 고사하고 보좌관이 미리 써준 연설문을 힐끔힐끔 보고 읽는 데다가, 성조(언어)도 전혀 지키지 않아서 여러모로 큰 웃음을 선사했다. 영어와는 다르게, 중국어는 성조가 틀리면 알아듣기 힘들다.[8] 외국어 능력을 뽐내는데 눈 멀어서 나라 망신을 제대로 시킨 셈인데, 일국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 말로 연설할 이유는 없다.[9] 중국의 속국 노릇을 자처한 굴욕적인 행보인 셈.[10]
- MBC에서 국장대우 논설위원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박근혜는 5선 국회의원으로 14년간 활동했으면서도 복잡하지 않은 국회 길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고,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들이 질문할 때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곤 하였다고 한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 중 오바마 대통령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리바리하다가 엉뚱한 대답으로 넘어가서 뉴스가 되었다.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오바마 대통령이 10여 분간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한 뒤, 박 대통령이 차례가 되자 머뭇거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오바마의 발언은 "Poor President Park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였다.[해석] 이게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자. 어찌 됐든 북핵 위기에 대한 질문에 한 답변은 '중국이 강한 조치로 해결해 주기를 기대한다.'였다.영상.
- 2016년 4.13 총선 선거운동 당시 박근혜 대통령 존영 논란이 있어 화제가 되었다."새누리당, 탈당한 4인은 대통령 '존영' 반납하라" 실질적인 재산 가치도 없는 사진 가지고 반납하네 싫네 하는 것도 화제가 되었지만, 왕조 시대나 독재 시대에나 나올 법한 특정 인물의 사진에 대한 극 존칭인 '존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더 화제가 되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을 두고서 '존영'으로 지칭했다.'존영'이 뭐길래 그 밖에 7월 14일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경북 성주군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하자 고령 박씨 문중에서 이에 대한 항의로 대통령 사진을 떼어 버리고 아래 사진처럼 쓰레기통에 아무렇게 구겨서 처박아 놓았다. 경북 성주군은 박 대통령 선영(조상의 묘소)이 있는 마을로, 증조부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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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권 초기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점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군주인 선덕여왕과 비교하는 기사 등이 많이 났다. 물론 대중적으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위인으로 알려진 선덕여왕이기에, 박근혜의 지지자가 아닌 이들은 이를 강력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박근혜 집권 중반부를 넘어가며 실정이 점차 드러나면서 일각에서는 선덕여왕과의 비교가 부적절하다는 평이 늘어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비현실적인 찬양과 신화로 점철된 선덕여왕이 실제로는 그다지 유능하진 못함에 주목한 사람들에 의해, 이전과는 반대 의미로 "박근혜와 닮았다"는 평이 다시 늘어났다.
-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로 인해서 한국 내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던 최규하를 제외하고 국가원수 자격으로 일본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이 없는 유일한 대통령이다. 역대 국가 원수 중에서도 유달리 해외 순방이 잦았던 박근혜임에도 정작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을 가지 않은 점은 상당히 의외인데 박근혜 정부의 전반기는 오히려 일본에서는 반일 인사에 가깝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위안부 합의 이후에는 잇따른 정치적 실패로 인해 사실상 레임덕에 빠져버려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18] 그리고 이후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됨에 따라 국가 원수 자격으로는 일본을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 마가렛 대처 같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물론 집권 후 평가는 이멜다 마르코스(...). 박근혜 본인은 롤모델 중 하나로 마가렛 대처를 꼽았으며#, 실제로 대처처럼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대처는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릴지언정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 없이 일국의 국가 지도자가 된 입지전적인 여성 정치인이고, 적어도 자신의 사상에 입각한 정책을 펼치려는 자주성, 실행하는 행동력과 정책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필요한 언변을 갖추었고, 자신을 보호 받아야 하는 여성으로 부각시켜 동정표를 얻으려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았으므로, 일개 민간인에게 정신적으로 휘둘린 박근혜와는 능력 면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게다가 대처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지지율이 치솟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포클랜드 전쟁에 맞대응해 사력을 다해 맞붙었고, 결국 이겨서 재선에 성공했다. 집권 말기에 내부의 등돌림과 여론의 압박에 어느 정도 스스로 사임한 대처와 달리 박근혜는 끝까지 버티다 파면 당했으며, 파면 이후에도 불복 투쟁을 전개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게다가 재선에 당선된 대처와는 달리 박근혜는 자기 임기조차 다 채우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농락 당하며 꼭두각시 신세로 나라의 실권을 바친 박근혜와의 비교는 대처에게 아주 큰 실례가 된다.
-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기 기간 동안 청와대에서 지낸 기간 18년
- 박 前 대통령의 사망 그 후의 칩거[20] 기간 18년
- 실질적인 정치 종사 기간 18년[21]
- 18대 대통령에 당선
- 20대 국회 제18차 본회의에서 탄핵 소추안 발의
- 탄핵이 없었다면 2018년 2월 25일 퇴임 예정이었다.
- 2018년 4월 6일, 국정농단 사건 재판 1심에서 징역 24년과 함께 벌금
10억원의 18배인180억원을 선고받았다. - 대통령 취임 후 1476일(1+4+7+6=18)만에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심지어 1476은 18의 배수이다. 18×82 = 1476 더 신기한 점은 1476의 약수의 수는 18개이다.
- 검찰조사를 받은 날짜와 장소 2017년 3월 21일 대검찰청 1001호도 각 숫자를 합하면 [27] 18이 된다.
- 탄핵이 가결된 12월 9일은 곱셈[29]으로 18이 된다.
- 그로부터 51.6년 후인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51.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 '삼성동 아주머니'로 오랫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식사를 담당했던 요리연구가 김막업 씨의 인터뷰가 기사화되었다. # 그러나 인터뷰를 보면 "박근혜는 절약 정신이 강해 뇌물을 받지 않을 것"이라거나 "꼼꼼하고 빈틈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등 박근혜에 대한 동정론을 자극하는 발언이 다수 있기에, 내용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심지어 김막업 씨는 "박근혜는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내리기까지 하였다. 물론 이 발언들에 대한 반론들은 차고 넘친다. 박근혜는 이미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정치자금으로 돈가방을 받았다는 증언#부터, 이전 해명과는 달리 최순실의 뇌물에 직접 개입하였다는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으며, 대국민담화에서조차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후보자 자격 검증회에서는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조순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거짓말을 하거나#, 최태민과의 관계에서도 거짓말을 늘어놓는 등#, 김막업의 발언에 대한 반론은 나무위키의 새 항목을 만들어도 모자랄 정도로 차고 넘친다.
- 유튜브에서 박근혜 석방 서명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고 있다. 이것 외에도 석방 운동을 하는 태극기부대시위와 이를 방영하는 유튜브채널이 많다 이 스트리밍들은 어째서인지 좋아요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보는 사람만 보는 방송이니 이상할 건 없다.
- 박정희가 반인반신 이라는 별명이 있어 그의 딸인 박근혜는 '쿼터갓'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종종 나온다.
[1] 이승만은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하긴 했지만) 어쨌든 박사 학위에 독립운동가라는 타이틀이 있었고, 윤보선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근무했던 이력과 해평 윤씨 문중에서 창씨 개명을 할 때도 유일하게 거부하였다고 한다.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는 행실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최소한 육군 장교의 말단인 소대장에서 시작해 장성까지 진급하며 나름 출세한 인물들이었다. 전노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란 타이틀도 있었고. 최규하는 박정희가 사망할 당시의 신분이 국무총리였으며, 국무총리가 되기 전에는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김영삼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장택상의 비서로 활동하였기에 정치인 이외의 이력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독재 정권에 항거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이 있다. 김대중은 정계입문 이전에 청년사업가로 활동한 이력이 있으며 역시 '독재 정권에 항거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노무현과 문재인 역시 인권변호사란 타이틀이 있었으며, 이명박은 기업인으로서 성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박근혜는 진짜 정계 진출 이전엔 그야말로 '박정희의 딸'이 유일한 타이틀이었다. 재단 이사장 이런건 말 그대로 그냥 얼굴마담이었고.[2] 전여옥 저서 『오만과 무능』 55p[3] 전여옥 저서 『오만과 무능』 56p[4]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부보다 규모가 큰 고객은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건 정부는 소비재시장의 진짜 큰손이다.[5] 육영수-박재옥 12살 차이, 박재옥-박근혜 15살 차이. 그래서 그런지 박재옥은, 아버지의 새 아내인 육영수를 여사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6] 공인이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이유로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대다수는 "친척 일을 도울 수도 있지"라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도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7] 사실 은지원이 1978년생으로서, 태어나자마자 박정희가 사망하기까지 1년간 같은 혜택을 누린 적이 있었다.[8] '마마마마마마마'를 성조만 넣어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예 성조만 이용해 만든 글도 있다. 항목 참조.[9] 일례로 두 나라 정상이 대화나 통화를 할 때, 한쪽이 상대방의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더라도 통역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개인과 개인의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10] 이 외에도 시진핑 앞에서 회의가 길어지자 어설픈 중국어로 배고프다고 칭얼대서 회의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적도 있었다.[11] 참고로 이란은 여성 복장에 대한 과도한 통제로 인권 탄압한다는 이유(소셜 미디어에 히잡 안 쓴 사진 올렸다가 구속되는 등등)로 국제적으로 비판을 받는 나라이다. 영국 여왕처럼 히잡 대신 모자만 쓰고 방문해도 외국 국빈 입장이라 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준비된 여성 대통령" 운운하던 박근혜가 코스프레 하듯이 히잡을 썼으니 생각 없는 행동인 것.[12] 김정숙 여사 또한 중동방문 당시 히잡을 착용한 바 있지만 이슬람 종교시설인 모스크 안에서만 착용했기 때문에 관련 논란이 거의 없었다.[해석] 불쌍한 박 대통령은 질문이 뭔지 기억조차 못 하시네요.[14] 모친 육영수 여사도 탁구를 즐겼다. 육 여사와 당시 최전성기였던 한국 탁구계의 레전드 이에리사가 자주 탁구를 쳤다고 한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에리사는 육영수 여사, 박근혜와 이러한 인연으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공천 받아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15] # 대선을 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별로 대선 후보에 누굴 올려 보낼지 결정하는 일명 '선거 속의 선거'라 할 수 있는 경선을 치러야 하고, 경선에서 후보로 당선된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다. 이에 불복하고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박근혜를 최대한 빨리 하야시키려면 지금(기사가 작성된 2016년 11월 말 당시 기준) 당장 경선을 해야 하며, 그랬을 때 기준이 2017년 4월에 박근혜가 하야 하는 것이다.[16] TV조선 뉴스 자막에서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로 써(...)로 줄여버린 일이 있었다. 자막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자취로 쓴다'와 '발로 쓴다'의 어감 차이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박근혜는 퇴임사를 발로 쓰지도 못하고 탄핵으로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고 말았다.[17] 朴대통령 "취임사는 꿈으로,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18]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에 오른 후에 일본 방문을 계획하였으나 이후 반대 세력의 어마어마한 비판으로 흐지부지 되었고, 마침 박근혜 탄핵 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권한이 정지되었다.[19] 단, 지우마 호세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 2번 결혼했지만 모두 이혼했다.[20] 사실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을 뿐, 육영재단 등을 통한 대외 활동은 꾸준히 했다.[21] 1998년 4월 2일, 재보궐선거에서 박근혜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원으로 당선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2016년 12월 9일 직무정지를 사실상의 정치 활동 종료로 본다면 18년이 된다. 정확히는 18년 8개월 7일.[22] 순수하게 머물렀던 기간[23] 30일 오전 10시 9분~31일 오전 4시 45분으로 18시간 30여분 정도 걸렸다.[24] 검찰이 의도적으로 18의 법칙을 인용해 혐의 개수로 18개를 만든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25] 2+0+1+4+4+1+6[26] 2+0+8+2+0+6[27] 2+0+1+7+3+2+1+1+0+0+1[28] 6+9+6+9+4+2[29]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