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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왕국 Kinereich Bayern Königreich Bayern | ||
국기 | 국장 | |
위치 | ||
1804년 ~ 1918년 | ||
역사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1804년 설립 1871년 독일제국 가맹 1918년 군주제 폐지 | ||
지리 | ||
위치 | 바이에른(독일 남부) | |
수도 | ||
인문환경 | ||
언어 | 바이에른어, 독일어 | |
종교 | ||
민족 | 바이에른인 | |
정치 | ||
정치체제 | ||
국가원수 | ||
주요 국왕 | ||
경제 | ||
통화 | 파피어마르크 | |
1. 개요[편집]
2. 약사[편집]
바이에른은 중세 시절 부터 독일의 5대 공국의 하나였던 유서 깊은 공국이었다. 이후 선제후국 중 하나가 되었다. 원래도 독일 내에서 위세가 큰 공국 중 하나였지만 나폴레옹 전쟁기에 나폴레옹에게 줄을 잘서서 주변 팔츠 공국 등을 흡수하며 더욱 영토를 확장했고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하며 유럽을 평정한 나폴레옹이 협력해 준 바이에른, 작센, 뷔르템베르크 3개의 공국을 1806년 왕국으로 승격시켜줬다.[2]
나폴레옹 전쟁 후 바이에른 왕국은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에 이은 3번째 국가가 되었다. 이후 대독일주의를 지지하며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에 섰으나, 오스트리아가 패전하면서 영향력이 크게 축소하여 결국 1871년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독일 제국에 가맹했다.
그래도 독일 제국에서 프로이센에 이어 두번째로 큰 왕국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폭넓은 자율권과 자치권을 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이에른 사람들은 모든 게 프로이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불만이 많았다.[3]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한때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곧 바이에른 자유주(Freistaat Bayern)가 되었고, 이 이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 후 바이에른 왕국은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에 이은 3번째 국가가 되었다. 이후 대독일주의를 지지하며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에 섰으나, 오스트리아가 패전하면서 영향력이 크게 축소하여 결국 1871년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독일 제국에 가맹했다.
그래도 독일 제국에서 프로이센에 이어 두번째로 큰 왕국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폭넓은 자율권과 자치권을 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이에른 사람들은 모든 게 프로이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불만이 많았다.[3]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한때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곧 바이에른 자유주(Freistaat Bayern)가 되었고, 이 이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 이모저모[편집]
4. 왕사(王史)[편집]
-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1806-1825) - 바이에른 선제후에서 왕으로 승격
- 루트비히 1세 (1825-1848) - 비교적 명군이었으나 여배우 롤라 몬테즈(Lola Montez)와의 스캔들로 큰 비난을 받고 양위함.
- 막시밀리안 2세 (1848-1864)
- 오토 (1886-1913) - 형 루트비히 2세처럼 정신질환이 있어 폐위되어 1916년 죽었다. 위의 두 왕 시기에 실권은 이들의 숙부인 루이트폴트 (Luitpold) 공에게 있었다.[5]
[1] 바이에른 왕국의 영토는 오늘날 바이에른주 영역 대부분과 라인란트팔츠주의 일부분(팔츠 지역)을 합친 영역이다. 단, 현재는 바이에른주에 속하는 코부르크 지역은 원래 바이에른 왕국이 아닌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영토였다.[2] 물론 이는 신성 로마 제국 내 유일한 제국인 오스트리아 제국과 유일한 왕국인 프로이센 왕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3] 이런 특징은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바이에른 왕국의 후손격인 바이에른주는 독일 내 다른 연방주들과 달리 고도의 자율권을 보장받고, 거의 별개의 독립국 수준으로 지역색이 강하다. 과거 프로이센에 속하던 연방주들과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덤.[4] 다른 제후국들의 군대는 편제상 독일 제국군에 흡수되었다. 작센 왕국군은 제국군 12군단, 뷔르템베르크군은 13군단, 바덴군은 14군단으로 운용.[5] 참고로 루이트폴트 공은 자신의 조카들이 정신적으로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폐위될 정도로 정신질환이 심각한 것은 아니라며 변호한 바 있다.[6] 국왕이 10년 이상 섭정없이 국사행위가 불가능할 시, 섭정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의 헌법 개정을 통해 즉위. 폐위된 오토는 왕으로써의 예우는 그대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