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매클린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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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수네 베리스트룀,
벵트 잉에마르 사무엘손,
존 로버트 베인[1]
바버라 매클린톡
1984 -닐스 카이 예르네,
게오르게스 쾰러,
세사르 밀스테인[2]
바버라 매클린톡
Barbara McClintock
출생
사망
1992년 9월 2일(향년 90세)
미국 뉴욕 헌팅턴
국적
직업
학력
코넬 대학교 학사 석사 박사 졸업
1. 생애2. 업적3. 여담

1. 생애[편집]

미국의 생물학자. 코넬 대학교[3]를 졸업하고 미주리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다 1941년에 사직한 뒤,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40년 이상 연구했다.

그녀가 발견한 이동성 유전인자는 너무 황당한 이론이라는 이유로 그 당시에는 무시당하다. 한참 뒤에 관찰기술의 발달로 진실임이 밝혀져 노벨상을 받게 된다. 몇십년 전의 선구적 연구를 81세 할머니가 되어서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 사람은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1983)을 수상한 생물학자이지만,[4] 과학사에서는 언더독(underdog)으로 분류되는 불운의 여성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심지어 그녀의 업적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는 마녀로 불리며 비난받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DNA 이중나선 구조의 공동발견자 중 한쪽인 제임스 왓슨의 인성(...)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왓슨이 쓴 책에 보면 '나랑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과학자들은 무지 재밌는 사람들인데 매클린톡이라는 깐깐하고 마녀같은 할머니가 있어요. 이 여자 옥수수밭 때문에 우리가 공놀이를 못함ㅋㅋ'이란 대목이 있다.

2. 업적[편집]

옥수수를 연구하여 전이성 유전인자를 발견했다.

3. 여담[편집]

  • 이블린 폭스 캘러가 저술한 생명의 느낌이라는 그녀의 전기가 있다.
[1] 프로스타글란딘 및 관련된 생물학적 활성 물질 연구[2] 면역계의 발생과 조절에서의 특수함과 관련된 이론 및 단일클론항체 생산의 원리 규명[3] 그 당시에 여자를 받아주는 대학은 여자대학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4] 그 외에도 1967년 미국과학원 킴버유전학상 수상, 1981년 앨버트 래스커 의학연구상 수상. 코넬대학교대학원 식물학 박사 미국 유전학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