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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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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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베를린 국제 영화제 수상작
제10회
(1964년)
제11회
(1961년)
제12회
(1966년)
엘 라시리요 데 토르메스
사랑의 유형

황금사자상
제24회
(1963년)
제25회
(1964년)
제26회
(1965년)
프란체스코 로시
(도시위에 군림하는 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붉은 사막)
루키노 비스콘티
(올사의 아름다운 별)

역대 칸 영화제
제19회
(1966년)
제20회
(1967년)
제21회
(1968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욕망)
수상작 없음


1. 개요2. 상세3. 필모그래피4. 기타


1. 개요[편집]

“Bold and fastidious Italian film director in whose haunting movies men and women explored the uncertainties between time and space. ”

“1960년대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한 감독. ”

2. 상세[편집]

1912년 이탈리아 페라라 출생. 볼로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지역 신문영화 잡지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 로마로 이동하여 치네치타 영화사의 촬영기술센터에서 영화 기술을 수련한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마르셀 카르네감독 등 쟁쟁한 감독조감독 경력을 거치고, 1950년 사랑의 연대기를 통해서 감독으로서 데뷔한다.

그의 대표작은 《정사》.(원래 제목은 모험(L'avventura)인데, 수입하면서 일본에서의 제목으로 수정되었다.) 이치카와 곤 감독의 《열쇠》와 더불어 1960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3] 한국에서는 196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욕망》으로 유명한데, 사실 이는 일본에서의 제목이 욕망이라서 이것이 한국으로 수입하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원제는 Blow-Up, 욕망이랑 그다지 상관없다. (...)

장뤼크 고다르 감독은 스스로 영화가 되는 감독이라며 장 비고 감독과 더불어 그의 이름을 거론했다. 잉마르 베리만,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과 더불어 현대 영화 최후의 거장이라고도 불린다.

2007년 7월 30일, 로마의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96세. 이는 공교롭게도 그와 동시대의 거장인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타계한 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에서 모두 최고상을 거머쥔 최초의 감독이다. 이후에 로버트 알트만 감독 역시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수상년도 및 작품은 다음과 같다.

1961년 제11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 <밤>
1964년 제28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 <붉은 사막>[4]
1967년 제2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 <욕망>

이혼 후 한동안 자기 영화의 페르소나로 나오던 모니카 비티 배우랑 10년간 연인 관계였다. 하지만 1970년에 헤어졌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다.

3. 필모그래피[편집]

  • 사랑의 연대기 Cronaca di un Amore (1950)
  • 카멜리에가 없는 숙녀 La Signora Senza Camelie (1953)
  • 패배자 I Vinti (1953)
  • 여자 친구들 Le Amiche (1955)
  • 외침 Il Grido (1957)
  • 정사 L'Avventura (1960)
  • La Notte (1961)
  • 태양은 외로워 L'Eclisse (1962)
  • 붉은 사막 Il Deserto Rosso (1964)
  • 욕망 Blow-Up (1966)
  • 자브리스키 포인트 Zabriskie Point (1970)
  • 중국 Chung Kuo, Cina (1972)
  • 여행자 Professione: Reporter (1975)
  • 오베르왈드의 비밀 Il Mistero di Oberwald (1980)
  • 여인의 정체 Identificazione di una Donna (1982)
  • 구름 저편에 Al di là delle Nuvole (1995)[5]

4.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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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파일:external/www.successeoggi.it/michelangelo_antonioni_1.jpg
말년

잉마르 베리만은 펠리니, 쿠로자와, 브뉴엘은 타르코프스키의 경지까지 도달했지만 안토니오니는 따분함에 숨이막혀 질식한채 끝났다라 평했다.#

[1] #[2] #[3] 당시 평단에게 기승전결 서사구조가 뚜렷하지 않다고 굉장한 비난을 받았지만,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과 앙드레 바쟁의 지지를 받았다.[4] 컬러의 선명도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고 배경을 분무기로 착색해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고 환경오염 문제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제작함.[5] 빔 벤더스와 공동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