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미야모토 요시노부(宮本 好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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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명
| 김호선(金好宣)[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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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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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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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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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후세공고 - 도시샤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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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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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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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 1975년 신인 드래프트 6라운드 (닛폰햄 파이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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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 닛폰햄 파이터즈(1975~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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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 |
프런트
| 닛폰햄 파이터즈 스카우터(1982~1991)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스카우트(1992~2008)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운영팀장(2009~2011) 넥센 히어로즈 육성팀 부장(2015) |
1. 소개
한화 이글스의 코치.
2. 아마추어 시절
3. 프로 시절
닛폰햄은 1975년 드래프트에서 대부분의 선수를 투수로 지명했는데, 정작 하위 픽인 미야모토를 빼면 대부분이 망했고, 미야모토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역시 실업 야구 시절의 모습은 보이지 못했고, 1979년을 끝으로 2군을 전전하다가 1981년 방출되어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할 때 다른 팀에서 영입을 제안받았으나, 주변에서 스카우트를 하면 오래 야구계에 남을 수 있다는 권유를 하자 은퇴 후 닛폰햄의 스카우트로 전향하게 된다.
현역 시절 포크볼을 던졌고, 포심과 큰 키에서 내리꽂는 슬라이더가 주 무기였다.
은퇴할 때까지 33경기 등판 84 2/3이닝 2승 4패, 방어율 5.08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실업 야구 시절의 모습은 보이지 못했고, 1979년을 끝으로 2군을 전전하다가 1981년 방출되어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할 때 다른 팀에서 영입을 제안받았으나, 주변에서 스카우트를 하면 오래 야구계에 남을 수 있다는 권유를 하자 은퇴 후 닛폰햄의 스카우트로 전향하게 된다.
현역 시절 포크볼을 던졌고, 포심과 큰 키에서 내리꽂는 슬라이더가 주 무기였다.
은퇴할 때까지 33경기 등판 84 2/3이닝 2승 4패, 방어율 5.08을 기록했다.
4. 은퇴 후
1982년부터 1991년 까지 닛폰햄에서,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에서 스카우트를 지냈고, 2009년에 운영팀장으로 승진한 뒤 2011년경 물러났다.
닛폰햄에서 근무하던 시절, 야쿠르트의 전설적인 포수 후루타 아쓰야가 안경 쓴 포수라는 이유로 닛폰햄에 지명받지 못했던 당시의 스카우터가 바로 미야모토였다. 갑작스런 닛폰햄 감독의 요구 때문에 뽑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야구장에서 후루타를 만날 때마다 사과하고 있다고.
요코하마의 스카우트 시절에는 대학 리그 타격왕 출신 후지타 가즈야를 영입한 공이 있다. 여담으로 후지타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나쁘지 않은 플레이를 펼쳤으나 그렇다고 또 눈에 확 띄는 플레이를 보여준 것도 아니라 결국 2012 시즌 도중 동 포지션의 라쿠텐 내야수 우치무라 켄스케와 트레이드 되었는데, 라쿠텐에서 완전히 포텐이 터져 2년 연속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를 싹쓸이했으며 일본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반면 우치무라는 폭망하여 2군 붙박이 신세...
2011년 박동희와의 인터뷰
SK 와이번스, 고양 원더스, 성균관대 야구부 등의 인스트럭터를 맡은 경험도 있다.
닛폰햄에서 근무하던 시절, 야쿠르트의 전설적인 포수 후루타 아쓰야가 안경 쓴 포수라는 이유로 닛폰햄에 지명받지 못했던 당시의 스카우터가 바로 미야모토였다. 갑작스런 닛폰햄 감독의 요구 때문에 뽑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야구장에서 후루타를 만날 때마다 사과하고 있다고.
요코하마의 스카우트 시절에는 대학 리그 타격왕 출신 후지타 가즈야를 영입한 공이 있다. 여담으로 후지타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나쁘지 않은 플레이를 펼쳤으나 그렇다고 또 눈에 확 띄는 플레이를 보여준 것도 아니라 결국 2012 시즌 도중 동 포지션의 라쿠텐 내야수 우치무라 켄스케와 트레이드 되었는데, 라쿠텐에서 완전히 포텐이 터져 2년 연속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를 싹쓸이했으며 일본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반면 우치무라는 폭망하여 2군 붙박이 신세...
2011년 박동희와의 인터뷰
SK 와이번스, 고양 원더스, 성균관대 야구부 등의 인스트럭터를 맡은 경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