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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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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축구감독 | ||
이름 |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 Miroslav Blažević | |
출생 | ||
국적 | ||
신체 | 키 179cm | |
직업 | ||
소속 | 선수 | |
감독 | 브베 스포츠 05(1968~1971) FC 시옹(1971~1976) 로잔 스포르(1976~1979) 스위스 대표팀(1976) HNK 리예카(1979~1980) 디나모 자그레브(1980~1983) 그라스호퍼(1983~1985) KF 프리슈티나(1986) 디나모 자그레브(1986~1988) FC 낭트(1988~1991) PAOK(1991~1992) 디나모 자그레브(1992~1994) 크로아티아 대표팀(1994~2000) 이란 대표팀(2001~2002) NK 오시예크(2002) 디나모 자그레브(2002~2003) NK 무라(2003) NK 바라주딘(2003~2005) 하이두크 스플리트(2005) 뇌샤텔 크사막스(2005~2006) NK 자그레브(2006~2008) 보스니아 대표팀(2008~2009) 상하이 선화(2009~2010) 중국 U-23 대표팀(2010~2011) 메스 케르만(2011~2012) NK 자그레브(2012~2013) 슬로보다 투즐라(2014) NK 자다르(2014) | |
국가대표 | 없음 | |
1. 개요[편집]
1.1. 축구인 생활[편집]
1.1.1. 선수 시절[편집]
1.1.2. 감독 시절[편집]
1.1.2.1. 크로아티아 이전[편집]
크로아티아 감독이 되기 전에 여러 팀들을 많이 옮겨다녔다. 국가대표 감독 경험으로는 스위스 감독직을 잠깐 한게 전부였다.
1.1.2.2. 크로아티아 대표팀[편집]
1994년에 부임하여 유로 1996에서는 8강까지 진출했다. 이 때 크로아티아는 독일에 2:1로 져서 탈락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전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이변을 일으키는데......,
조 편성 결과 H조에 편성되었다. 같은 조에는 아르헨티나, 자메이카, 일본이 있었다. 여기서 최강국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나머지 3개국 모두 월드컵에 처녀출전한 국가들이었다. 본선 시작과 동시에 다보르 슈케르의 득점행진이 이어지게 된다. 자메이카전은 3:1, 일본전은 1:0 승리 그리고 아르헨티나전은 1:0으로 패배하여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는 루마니아를 다보르 슈케르의 결승골로 누른 뒤 8강에서 독일을 만났는데 3:0으로 격파했다. 4강에 올라가니 홈팀 프랑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전은 다보르 슈케르의 선제골로 리드를 가져갔으나 릴리앙 튀랑이 인생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2:1로 패배하여 3위 결정전으로 떨어졌다. 그다음 상대는 네덜란드였는데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와 다보르 슈케르가 득점을 하여 2:1로 승리하여 대회 3위를 차지했다. 이 때 다보르 슈케르는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유로 2000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다.
조 편성 결과 H조에 편성되었다. 같은 조에는 아르헨티나, 자메이카, 일본이 있었다. 여기서 최강국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나머지 3개국 모두 월드컵에 처녀출전한 국가들이었다. 본선 시작과 동시에 다보르 슈케르의 득점행진이 이어지게 된다. 자메이카전은 3:1, 일본전은 1:0 승리 그리고 아르헨티나전은 1:0으로 패배하여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는 루마니아를 다보르 슈케르의 결승골로 누른 뒤 8강에서 독일을 만났는데 3:0으로 격파했다. 4강에 올라가니 홈팀 프랑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전은 다보르 슈케르의 선제골로 리드를 가져갔으나 릴리앙 튀랑이 인생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2:1로 패배하여 3위 결정전으로 떨어졌다. 그다음 상대는 네덜란드였는데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와 다보르 슈케르가 득점을 하여 2:1로 승리하여 대회 3위를 차지했다. 이 때 다보르 슈케르는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유로 2000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다.
1.1.2.3. 크로아티아 이후[편집]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협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1] 이후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갔지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본선에는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막혀서 나가지는 못했다. 이후 여러 팀을 옮겨다니다가 2014년에 지도자 생활도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