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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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식 명칭
| 97식 전투기 ([ruby(九七式戦闘機,ruby=きゅうななしきせんとう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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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식 기호
| 키27 (キ27) / Ki-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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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
| Japanese Army Type 97 Fighter Nakajima Ki-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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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Nate), 압둘(Abdu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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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원
운용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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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집단
| 일본 제국 육군 항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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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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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시기
| 193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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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도 비행 시기
| 1936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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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연도
| 1937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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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수
|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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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 7.53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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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폭
| 11.31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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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
| 3.25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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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익 면적
| 18.56 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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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면 하중
| 96.5 kg/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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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중량
| 1,110 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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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량
| 1,547 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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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중량
| 1,790 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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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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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펠러
| 2엽 프로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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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속도
| 3,500 m에서 470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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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항 속도
| 3,500 m에서 350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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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속 거리
| 627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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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 비행 거리
| 1,710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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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률
| 5,000 m까지 5분 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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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 상승 한도
| 12,250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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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 기수 상단에 7.7 mm 89식 고정기관총 2정, 각 500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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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장
| 25 kg 폭탄 4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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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수
| 3,368~3,386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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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생형
- 키27(キ27) - Ki-27: 시제기. 하1갑(Ha-1a)을 장착한 시제기와 하1을(Ha-1b)를 장착한 시제기 등이 있다.
- 97식 전투기 을[키27 을](九七式戦闘機乙[キ27 乙]) - Ki-27b: 캐노피와 오일 냉각기를 개량한 기종. 추가로 폭장과 보조 연료 탱크 장착이 가능해졌다. 약 1492대 생산됐다.
- 2식 고등연습기[키-79](二式高等練習機[キ79]) - Ki-79: 만슈 비행기에서 만든 훈련기, 510마력의 하13갑(Ha-13a)을 장착했다.
- 2식 고등연습기 갑[키-79](二式高等練習機甲[キ79 甲]) - Ki-79a: 하13갑 1형(Ha-13a-I)을 장착한 단좌 훈련기.
- 2식 고등연습기 을[키-79](二式高等練習機乙[キ79 乙]) - Ki-79b: 하13갑 1형(Ha-13a-I)을 장착한 복좌 훈련기.
- 2식 고등연습기 병[키-79](二式高等練習機丙[キ79 丙]) - Ki-79c: 하13갑 3형(Ha-13a-III)을 장착하기로 계획된 단좌 훈련기.
- 2식 고등연습기 정[키-79](二式高等練習機丁[キ79 丁]) - Ki-79d: 하13갑 3형(Ha-13a-III)을 장착하기로 계획된 복좌 훈련기.
4. 개발
1935년, 해군의 9시 단좌전투기(후의 96식 함상전투기)의 성공에 자극받은 육군은 해군의 양해를 얻어 9시 단전을 육군용으로 개조한 미쓰비시 Ki-18을 가와사키 95식 전투기를 채용하던 때의 시작심사에 도중 참가시켰다. 하지만 엔진의 신뢰성 부족과 성능 불충분을 이유로 채용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가와사키 Ki-10을 95식 전투기로 채용했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복엽기였던 95식은 차기 주력 전투기로서는 부족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전투기로서 1936년 4월, 저익 단엽전투기의 경쟁 시작을 나카지마, 미쓰비시, 가와사키 3사에 지시했다.
이리하여 나카지마의 Ki-27, 가와사키의 Ki-28, 미쓰비시의 Ki-33의 경쟁이 되었는데, 이전에 Ki-18이 채용되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았던 미쓰비시는 시작기 제출은 했지만 열의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1937년 2월부터 시작된 심사는 수냉식으로 엔진에 불안이 있었던 Ki-28을 누르고 이 기체가 선정되었다. 그동안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심사를 서둘러 9월에 종료, 1937년 97식 전투기로서 정식 채용되었다.
결론적으로 미쓰비시는 이 기체의 기술적 성숙을 위한 떡밥으로 쓰였으며, 이후 해군의 전투기는 미쓰비시, 육군의 전투기는 나카지마가 주체가 되는 형태가 되었다. 중일전쟁 후 중국 한커우 기지에서 가끔 행해진 육군과 해군의 모의 공중전에서는 A5M보다 Ki-27이 속도, 상승력, 격투전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우세, 해군 조종사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Bf109,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호커 허리케인 등이 97식 전투기와 비슷한 시기에 완성되었고, 경량형 전투기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 중형 전투기[21] 개발쪽으로 나가게 된다.[22] 이후 Ki-43이 양산되자 2선급으로 물러났다가 1942년 초중반부터는 연습기나 특공기로 사용된다.
이리하여 나카지마의 Ki-27, 가와사키의 Ki-28, 미쓰비시의 Ki-33의 경쟁이 되었는데, 이전에 Ki-18이 채용되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았던 미쓰비시는 시작기 제출은 했지만 열의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1937년 2월부터 시작된 심사는 수냉식으로 엔진에 불안이 있었던 Ki-28을 누르고 이 기체가 선정되었다. 그동안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심사를 서둘러 9월에 종료, 1937년 97식 전투기로서 정식 채용되었다.
결론적으로 미쓰비시는 이 기체의 기술적 성숙을 위한 떡밥으로 쓰였으며, 이후 해군의 전투기는 미쓰비시, 육군의 전투기는 나카지마가 주체가 되는 형태가 되었다. 중일전쟁 후 중국 한커우 기지에서 가끔 행해진 육군과 해군의 모의 공중전에서는 A5M보다 Ki-27이 속도, 상승력, 격투전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우세, 해군 조종사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Bf109,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호커 허리케인 등이 97식 전투기와 비슷한 시기에 완성되었고, 경량형 전투기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 중형 전투기[21] 개발쪽으로 나가게 된다.[22] 이후 Ki-43이 양산되자 2선급으로 물러났다가 1942년 초중반부터는 연습기나 특공기로 사용된다.
5. 실전
1938년부터 중일전쟁에 투입돼 구식 기종을 몰던 중화민국 공군을 상대로 상당한 전과를 보였다. 하지만 1939년 할힌골 전투에서 I-15bis와 I-153, 그리고 I-16을 상대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차기 전투기에선 방탄판과 방루 탱크를 설치하는 교훈이 됐다.[23]
2선급으로 물러난 후 왕립 태국 공군에 공여됐다. 1944년 11월엔 Ki-27 5대가 P-51D 9대, P-38 7대 총 16대 편대에 맞서 싸워, Ki-27 5대가 모두 격추됐지만 P-51D 2대에 불을 붙히고 P-38 1대를 격추하는 엄청난 전과를 보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편성된 인도네시아 임시 공군에서 운용한 버려진 일본 기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2선급으로 물러난 후 왕립 태국 공군에 공여됐다. 1944년 11월엔 Ki-27 5대가 P-51D 9대, P-38 7대 총 16대 편대에 맞서 싸워, Ki-27 5대가 모두 격추됐지만 P-51D 2대에 불을 붙히고 P-38 1대를 격추하는 엄청난 전과를 보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편성된 인도네시아 임시 공군에서 운용한 버려진 일본 기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6. 평가
7. 대중매체
7.1. 게임
Ki-27 을형
| Ki-27 을형
(중화민국 노획버젼) | Ki-27 을형
타치아라이 탑승기 |
7.2.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8. 둘러보기
[1] 중국, 인도차이나, 버마, 인도 전역 등에서 미식별 항공기에게 붙힌 코드명이다. 그 당시에는 A5M의 존재하지도 않은 후속기(일명 해군 97식 함상전투기)로 봤다.[2] 중국, 인도차이나, 버마, 인도 전역 등에서 미식별 항공기에게 붙힌 코드명이다. 그 당시에는 A5M의 존재하지도 않은 후속기(일명 해군 97식 함상전투기)로 봤다.[3] 만슈비행기에서 만든 훈련기는 "2식 고등연습기 Ki-79"라는 제식명과 기호를 따로 받았다.[4] 출처: Japanese Aircraft of the Pacific War, 저자: Francillon, Ph.D., René J[5] 쇼와 12년, 황기 2597년[6] 쇼와 12년, 황기 2597년[7] 코토부키 엔진이라고도 불린다.[8] 이륙 시 710마력, 2,900 m에서 780마력[9] 코토부키 엔진이라고도 불린다.[10] 이륙 시 710마력, 2,900 m에서 780마력[11] 특공용으로 250 kg 폭탄 1개를 장착한 적이 있으나 지나치게 무거워 기체의 정상적인 이착륙이 어려운 수준이었다.[12] 특공용으로 250 kg 폭탄 1개를 장착한 적이 있으나 지나치게 무거워 기체의 정상적인 이착륙이 어려운 수준이었다.[13] 갑형 565대, 을형, 1492대, Ki-79 1,329대[14] 갑형 565대, 을형, 1492대, Ki-79 1,329대[15] a 대신 甲을 그대로 읽어서 Ki-27 Ko라고도 한다. 이하 을(Otsu), 병(Hei), 정(Tei)도 같다.[16] 패스트백형이라도고 한다.[17] a 대신 甲을 그대로 읽어서 Ki-27 Ko라고도 한다. 이하 을(Otsu), 병(Hei), 정(Tei)도 같다.[18] 패스트백형이라도고 한다.[19] a 대신 甲을 그대로 읽어서 Ki-27 Ko라고도 한다. 이하 을(Otsu), 병(Hei), 정(Tei)도 같다.[20] 패스트백형이라도고 한다.[21] 쌍발 중전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경량형 전투기보다 더 무거운 전투기를 이른다.[22] 이렇게 만들어진게 Ki-44와 Ki-61 등이다. 그러나 여전히 경량 전투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Ki-43 또한 개발하게 된다.[23] 반면에 해군 항공대쪽은 여전히 승무원 보호를 경시하는 것을 보였고, 2차 대전 중반에서야 겨우 장비하게 된다.[24] P-40의 기종마다 다르지만 약 100 km/h 이상 차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