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
I-168은 2차대전때 일본 해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해대 6형 잠수함의 1번함이다. 미드웨이 해전때 미국의 항공모함 USS 요크타운을 격침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 168 혹은 I-68이라고도 한다. 영문명으로 카이다이는 이 해대를 의미한다. 독일 잠수함 U보트의 활약으로 카이다이 형 잠수함 건조를 시작으로 7형까지 건조된 해군대형 잠수함 중 6형a 모델이다. 계획번호는 S31. 런던군비축소조약후인 1930년도의 제1차 군비보충계획(마루1계획)으로 건조된 첫번째 잠수함. 1942년 나구모 중장이 이끄는 연합함대 제1본대 휘하 제 30잠수전대 소속. 함장은 다나베 야히치 소좌였다. 미드웨이 해전 에도 참전하여 정규공모 히류의 공격으로 대파상태가 된 미 항공모함 요크타운을 어뢰 두발을 명중시켜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1943년 라바울 북쪽에서 미잠수함 스캠프의 공격으로 침몰했다.
2. 제원
건조
| 1931년 6월 18일
|
진수일
| 1933년 6월 26일 (구레 진수부)
|
전장
| 322' 10"
|
최대 폭
| 26' 11" [2]
|
배수량
| 2, 440톤 [4]
|
추진력
| 이중 캄폰 터빈 9,000 마력/ 이중 스트로클 bhp
|
속력
| 23 노트 디젤엔진 /8.2 노트 (전기장치)
|
잠수가능 깊이
| 230'
|
무장
| 6어뢰신관, 14 21'어뢰, 1X13mm 대공 기관총,
10cm단장고각포 1문, 13mm기총 1정, 7.7mm기총 1정, 53cm 어뢰 14발 |
기타
| MV식 수중탐신의 (소나), 91식 탐신의
|
승조원
| 68명
|
3. 함생
위에 상기한대로 독일 U보트의 활약을 지켜본 일본 해군이 구레 진수부에서 1930년도의 제1차 군비보충계획(마루1계획)으로 건조한 첫 번째 잠수함이었다. 진주만 기습 작전에서 처음 실전에 참가했을 때는 폭뢰 공격을 받아 후방발사관 침수피해를 입었다.
이후 1942년에는 연합함대 소속 제 30잠수전대로 편성되어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했다.[5]
당해 6월 5일 미쿠마의 정찰기의 발견으로 I-168은 함대사령관 야마모토의 지시로 이미 좌현으로 26도 정도 기울어져있었던 요크타운의 격침명령을 하달받는다. 6월 6일 4시 10분, I-168 함장인 다나카 야하치 소좌는 드디어 요크타운을 발견하고 속력을 12노트로 줄여 항적을 줄인 후 잠항해 30분에 5초씩만 잠함경으로 요크타운을 관찰했다. 15,000m 거리에서 외각 경계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한 I-168은 이내 우현 2,000m까지 접근하여 4발의 95식 산소어뢰를 2도 간격으로 5초에 한번씩 발사하고 재빨리 잠항했다. 첫 어뢰가 요크타운 우현 84 프레임에 명중했고 두 번째 어뢰는 요크타운 우현에 붙어있던 구축함 햄먼에 명중해 함체가 절반으로 갈라졌고, 세 번째 어뢰는 요크타운의 우현 95 프레임에 명중, 네 번째 어뢰는 빗나갔다. 이때 햄먼의 피해가 막심해 장비했던 폭뢰가 폭발하고, 때문에 동승했던 햄먼 승무원들의 사상자가 생겼다. 요크타운은 피격 후 서서히 가라앉다가 1942년 6월 7일 오전 4시 58분 완전히 침몰한다.
전과를 올리고 해역을 빠져나가던 I-168은 어뢰 발사 직후부터 자신을 주시하던 미 구축함 휴이에게 추격당해 어뢰 3발을 지근탄으로 맞았고, 그 결과로 축전지가 손상되어 잠시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이를 발견한 구축함들이 폭뢰를 바닥날 때까지 투사해댔으나 급히 잠항한 I-168은 해역을 빠져나가 다시 부상해 구레 진수부로 돌아가서 혁혁한 전과를 인정받게 된다.
1943년 1월에는 사세보에 입항해서 과달카날 섬에 식량 수송 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 어뢰정의 공격에 피격되어 다시 입항했으며, 3월에 요코스카를 출항하여 키스카 섬 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7월에 트럭 섬 정박지에서 출항해 전략적 요충지인 라바울 북쪽 해역에서 초계임무를 펼치던 I-168은 역시 하노버섬 앞바다에서 같은 임무를 수행하던 가토급 미 잠수함 스캠프의 어뢰에 피격당해 완파. 당시 함장이었던 나카지마 중좌 이하 100여명의 승조원과 함께 침몰한다.
처음에 본국에 알려지지 않다가 9월 10일에 라바울 북쪽에서 침몰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1942년에는 연합함대 소속 제 30잠수전대로 편성되어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했다.[5]
당해 6월 5일 미쿠마의 정찰기의 발견으로 I-168은 함대사령관 야마모토의 지시로 이미 좌현으로 26도 정도 기울어져있었던 요크타운의 격침명령을 하달받는다. 6월 6일 4시 10분, I-168 함장인 다나카 야하치 소좌는 드디어 요크타운을 발견하고 속력을 12노트로 줄여 항적을 줄인 후 잠항해 30분에 5초씩만 잠함경으로 요크타운을 관찰했다. 15,000m 거리에서 외각 경계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한 I-168은 이내 우현 2,000m까지 접근하여 4발의 95식 산소어뢰를 2도 간격으로 5초에 한번씩 발사하고 재빨리 잠항했다. 첫 어뢰가 요크타운 우현 84 프레임에 명중했고 두 번째 어뢰는 요크타운 우현에 붙어있던 구축함 햄먼에 명중해 함체가 절반으로 갈라졌고, 세 번째 어뢰는 요크타운의 우현 95 프레임에 명중, 네 번째 어뢰는 빗나갔다. 이때 햄먼의 피해가 막심해 장비했던 폭뢰가 폭발하고, 때문에 동승했던 햄먼 승무원들의 사상자가 생겼다. 요크타운은 피격 후 서서히 가라앉다가 1942년 6월 7일 오전 4시 58분 완전히 침몰한다.
전과를 올리고 해역을 빠져나가던 I-168은 어뢰 발사 직후부터 자신을 주시하던 미 구축함 휴이에게 추격당해 어뢰 3발을 지근탄으로 맞았고, 그 결과로 축전지가 손상되어 잠시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이를 발견한 구축함들이 폭뢰를 바닥날 때까지 투사해댔으나 급히 잠항한 I-168은 해역을 빠져나가 다시 부상해 구레 진수부로 돌아가서 혁혁한 전과를 인정받게 된다.
1943년 1월에는 사세보에 입항해서 과달카날 섬에 식량 수송 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 어뢰정의 공격에 피격되어 다시 입항했으며, 3월에 요코스카를 출항하여 키스카 섬 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7월에 트럭 섬 정박지에서 출항해 전략적 요충지인 라바울 북쪽 해역에서 초계임무를 펼치던 I-168은 역시 하노버섬 앞바다에서 같은 임무를 수행하던 가토급 미 잠수함 스캠프의 어뢰에 피격당해 완파. 당시 함장이었던 나카지마 중좌 이하 100여명의 승조원과 함께 침몰한다.
처음에 본국에 알려지지 않다가 9월 10일에 라바울 북쪽에서 침몰한 것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