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2001년 상·하반기 재보궐선거
| →
| ||
1. 개요
2. 상반기(2001년 4월 26일)
200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기초자치단체의원 선거 결과
|
14석[2]
|
투표율은 28.2%.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참패를 당했다.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 선거였다.
당선자는 노재동(한나라당)(서울 은평구청장),김문곤(한나라당)(부산 금정구청장),임성규(자민련)(충남 논산시장),이철규(무소속)(전북 임실군수),강근호(무소속)(전북 군산시장),황철곤(한나라당)(경남 마산시장),김수영(한나라당)(이상 기초자치단체장)
홍성률(한나라당)(부산 기장군 제1선거구),장성수(한나라당)(부산 기장군 제2선거구),송중빈(새천년민주당)(충남 논산시 제1선거구),이종칠(한나라당)(경북 영천시 제2선거구),정판용(한나라당)(경남 진해시 제2선거구),최두관(한나라당)(경남 통영시 제2선거구)(이상 광역의회의원)
3. 하반기(2001년 10월 25일)
- 재보궐선거 사유는 다음과 같다.
격전지인 동대문구 을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투표율도 가장 높은 45.6%를 기록했다.(전국 평균 41.9) 향후 정국 주도권을 염두에 둔 중요한 선거였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인 홍준표가 서울 동대문구 을에서 당선되어 중앙 정계에 복귀하였다. 구로구 을은 한나라당 이승철, 강릉시는 한나라당 최돈웅(...)[7] 각각 당선. 정권 심판론속 한나라당의 전승으로 끝났다.
새천년민주당은 이번에도 참패를 당했고, 그 여파로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에서 사임하게 되었고, 대통령=여당총재라는 공식도 이 날을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3.1. 선거결과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32,095
| 1위
| |
50.6%
| 당선
| ||
2
| 28,381
| 2위
| |
44.7%
| 낙선
| ||
3
| 장화식
| 1,850
| 3위
|
2.9%
| 낙선
| ||
4
| 김숙이
| 1,152
| 4위
|
1.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0,280
| 투표율
46.66% |
투표 수
| 63,999
| ||
무효표 수
| 521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27,068
| 1위
| |
49.4%
| 당선
| ||
2
| 23,411
| 2위
| |
42.8%
| 낙선
| ||
3
| 725
| 5위
| |
1.3%
| 낙선
| ||
4
| 정종권
| 1,427
| 4위
|
2.6%
| 낙선
| ||
5
| 김향미
| 1,467
| 3위
|
2.7%
| 낙선
| ||
6
| 조평열
| 671
| 6위
|
1.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0,493
| 투표율
39.4% |
투표 수
| 55,314
| ||
무효표 수
| 545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28,351
| 1위
| |
41.4%
| 당선
| ||
2
| 김문기
| 8,876
| 3위
|
13.0%
| 낙선
| ||
3
| 김원덕
| 5,238
| 4위
|
7.6%
| 낙선
| ||
4
| 노승현
| 3,453
| 5위
|
2.7%
| 낙선
| ||
5
| 22,618
| 2위
| |
33.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8,830
| 투표율
41.0% |
투표 수
| 69,224
| ||
무효표 수
| 688
| ||
[1]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전까지는 기초자치단체의원직에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아 정당 소속이 없었다.[2]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전까지는 기초자치단체의원직에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아 정당 소속이 없었다.[3] 현직의원인 김영구 당선자와 민주당 허인회 후보가 모두 위장전입을 해서 선거가 무효가 되었다.[4] 애경그룹 회장이었는데, 구로구에 애경그룹 본사가 있어서 출마했으나 당선무효가 되어 정계를 떠났다.[5] 현직의원인 김영구 당선자와 민주당 허인회 후보가 모두 위장전입을 해서 선거가 무효가 되었다.[6] 애경그룹 회장이었는데, 구로구에 애경그룹 본사가 있어서 출마했으나 당선무효가 되어 정계를 떠났다.[7]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당선 무효가 거의 확실해지자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같은 지역구에 다시 출마해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