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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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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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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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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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 지역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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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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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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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9년 ~ 56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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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딘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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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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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2] 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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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2.1.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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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마르 공화국 뮌헨에서 '독일노동자당(나치스)'이 결성되었다.
- 2월 8일: 일본 도쿄 조선청년기독교회관에서 재일 유학생들이 〈2.8 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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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일: 고종 황제의 국장이 거행되었다.
- 4월 10일: 중화민국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제1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열렸다.
- 10월 17일: 임정이 일본령 조선에 임시총판부를 설치하였다.
2.2. 가상
- 10월 4일: 프랑스가 독일 제국에 항복하며 이미 항복한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발칸 국가들을 대상으로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진다. 항복하지 않은 영국, 포르투갈 공화국과는 코펜하겐에서 휴전 협정이 맺어진다. 일본은 휴전을 거부하며 전쟁 상태를 유지한다. -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
3. 탄생
3.1. 실제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4.2. 가상
5. 달력
[1] Before Present[2] Before Present[3] 형식상으로는 일본 학제와 동일하게 융화 정책을 사용하였지만 실상은 '동일한 교육 제도와 교육 기간을 확충함으로써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 또는 말살'이었다. 특히,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주입, 강요하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 또는 말살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4] 그동안 4월 13일이 수립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18년에 각종 사료와 임시정부의 당대 기록 분석을 통해 4월 11일이 임시정부 수립일인 것으로 밝혀졌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부터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도 4월 11일로 바로 잡혔다.[5] 형식상으로는 일본 학제와 동일하게 융화 정책을 사용하였지만 실상은 '동일한 교육 제도와 교육 기간을 확충함으로써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 또는 말살'이었다. 특히,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주입, 강요하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 또는 말살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6] 형식상으로는 일본 학제와 동일하게 융화 정책을 사용하였지만 실상은 '동일한 교육 제도와 교육 기간을 확충함으로써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 또는 말살'이었다. 특히,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주입, 강요하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 또는 말살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7] 그동안 4월 13일이 수립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18년에 각종 사료와 임시정부의 당대 기록 분석을 통해 4월 11일이 임시정부 수립일인 것으로 밝혀졌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부터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도 4월 11일로 바로 잡혔다.[8] 작가의 실수. 정확히는 작가가 대한민국의 독립선언일=생일을 1919년 5월 1일로 적어놨다.(...)[9] 작가의 실수. 정확히는 작가가 대한민국의 독립선언일=생일을 1919년 5월 1일로 적어놨다.(...)